제 어머니께서는 식물을 가꾸는데 일가견이 있으십니다. 죽어가는 나무와 꽃들도 어머니의 보살핌을 거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아나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와는 달리 저는 식물을 가꾸는데 소질이 없습니다. 물도 잘 주고, 햇볕도 충분히 쐬어 주지만, 며칠을 못가 생기를 잃으며 금방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오죽하면 동기들이 '식물에 미안하지도 않냐.'며, 제가 새로운 식물을 들이는 것을 반대하곤 했으니까요.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사제관에서 고무나무 두 그루를 가꾸는 중입니다. 아직까진 별 탈 없이 자라고 있지만, 언제 시들어 버릴지 몰라 가끔씩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투키’라는 식물입니다. 식물을 기르는데 소질이 없는 제 곁에서도, 무난하게, 심지어 잘 자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인장처럼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식물이라 그런지, 종종 물을 주는 것을 잊어도 시들지 않습니다. 신경을 못 쓸 때가 많지만 별 탈 없이 자라주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변하지 않고,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작은 피조물을 바라보며 때로는 위안을 얻습니다. 쉽게 판단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대가 요청하는 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속 조급함으로 인해 내린 판단과 결정으로 얼마나 많은 열매와 결실을 놓치고 말았는지요, 마음속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흔들리다 결국 자신 안에 갇혀 버리고 만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그런 우리에게 사순 제3주일의 말씀은 ‘신앙의 항구함’으로 나아가기를 촉구합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척박함 속에서도 항구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어느 작은 피조물처럼, 우리 역시도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 항구함을 간직해야 합니다.
흔들리는 것은 우리요, 주님께서는 흔들리지 않는 항구한 자비를 보여주시니, 그분의 돌봄 아래 살아가는 우리가 맺어야 할 결실은 주님을 닮은 자비입니다.
흔들리고 멀어지더라도 다시금 ‘주님께로 돌아가 항구히 머무는 것’. 쉽게 판단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사순 시기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무언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