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변모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목격합니다. 또한, 영광에 싸여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를 함께 목격하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이룩하실 일을 듣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룩하실 일은 ‘구원을 위해 세상을 떠나심’이었습니다. 영광에 싸여 모습을 드러내신 그리스도께서는 고통과 수난을 동반한 새 파스카를 언급하십니다. ‘세상을 떠나실’에서 ‘떠나다’는 탈출을 의미하는 희랍어 'εξοδον'이 사용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시어 자유를 선사하신 하느님은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고통과 고난에 참여하시어 새 파스카를 세우셨고 인류와 새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에 그리스도의 변모 사건을 듣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격했고 새롭게 맺어질 새 계약과 새 파스카를 듣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인간과 유대하시고, 그로인해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심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겪으실 고통 뒤에 찾아올 영광을 미리 목격하였고 그리하여 그들은 훗날 그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구약에서 영광은 목격에 그쳤지만 신약에서는 참여로 확장됩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
하지만 누가 선뜻 고통이 있는 길을 선택하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할 수 있을까요? “성장통이다.”라는 생각으로 고통을 참기만 하고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그저 미련하게 고통을 참고 견디어내는 것을 바라실까요?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참고 견디어내라, 고통을 받으라', 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통을 받고 견뎌라.'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라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죄와 고통이 시작된 이유는 첫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그 죄를 씻어내고자 고통을 짊어지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부활하시어 다시 나타나셨고 영광을 모든 이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하얗게 번쩍였다."고 합니다. 흰옷은 더러워지기 쉬워 자주 입기 꺼려집니다. 혹시라도 때가 타지 않을까 조마조마합니다. 하지만 더러워진 옷은 다시 세탁해서 입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자비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란 없습니다. 고통을 마주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비와 사랑의 주님을 찾을 수 있는 회개의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