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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의 뿔 나팔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2-28 08:55:35 조회수 : 75

레위기 25장 9절의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희년을 맞을 때마다 숫양 뿔로 만든 나팔을 불어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 가운데 하나로 하느님 예배에 사용된 뿔 나팔(시편 98,5-6; 150,3 등)은 지금도 유다교 회당에서 쓰입니다. 뿔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야생 양’ 또는 ‘염소’를 의미하는 아카드어 [샤파루]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부터 숫양.숫염소의 뿔처럼 구부러진 쇼파르가 일반적으로 쓰인 건, 그 휜 형태가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바빌로니아 탈무드』 로쉬 하샤나 26ㄴ). 곧 죄를 짓더라도 회개해서 주님께 ‘돌아가리라.’는, 또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숫양의 뿔이 가장 대중적으로 쓰인 건, 아브라함이 번제물로 바치려 한 이사악 대신 숫양이 마련된 “야훼 이레”(창세 22,14)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바빌로니아 탈무드』 로쉬 하샤나 16ㄱ). 소뿔로 나팔을 만들지 않는 것은 금송아지 배교 사건(탈출 32장)을 상기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미쉬나』 로쉬 하샤나 3,2). 


뿔 나팔 소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신호였습니다. 이는 탈출기(19,16-20)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집트에서 갓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 아래 집결해 있을 때 주님께서 쇼파르 소리와 함께 불 속에서 현현하십니다. 모세가 아뢰는 말에 주님께서 우렛소리로 답하셨는데, 이때 울려 퍼진 쇼파르(“뿔 나팔 소리”)가 천둥 같은 주님의 음성(욥 26,14; 에제 1,24 등)을 상징합니다(묵시 4,1).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예리코를 정복할 때는, 사제들의 뿔 나팔 소리에 따라 백성이 함성을 지르자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여호 6장). 쇼파르의 소리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함은 민수기 29장 1절에서도 암시됩니다. 이는 신년의 초하루를 “나팔을 부는 날”로 규정한 구절로, 나팔을 불어 새해의 시작을 온 백성에게 알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레위 23,24).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새해 첫날 나팔을 분 데에는 ‘하느님이 온 세상의 임금이심’을 다시금 천명하려는 의미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렇다면, 뿔 나팔을 불어 희년을 신호하도록 규정한 목적도, 희년 선포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백성에게 환기하려는 데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느님의 현존을 신호한 뿔 나팔의 의미는 신약성경에도 이어집니다. 그리스어로 뿔 나팔은 [살핑크스]인데, 마태오 복음(24,29-31) 등에서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신·구약 시대 이스라엘에서 온 세상의 임금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한 뿔 나팔은 오늘날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뿔 나팔 미사’에도 반영되어 그 의미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