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많은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곤 하지만,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부터 답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차원에서 행복을 정의하는 듯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뜻은 “사람의 운수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거나 풍족한 삶을 누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두 번째 뜻에서 ‘풍족한 삶’이라는 말은, 저에게는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을 느끼게 하는 그 ‘상태’를 위해 돈은 필수적일까요?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돈이 실제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미국은 연간 약 4억 원이 필요하고, 서유럽은 연간 9천만 원이, 동유럽은 6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행복에 연간 가격을 매긴 것으로, 연구자들은 '동료와 비슷한 나이, 교육, 결혼 및 주택 소유 상태를 가진 사람들일 경우, 자신이 더 많이 번다고 믿는 것이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들이 말하는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물질적 우위에 있을 때 느끼는 만족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은 행복의 정도에 비례할 수는 있으나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존재하기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라는 것보다 ‘약간의 만족감을 살 수 있다.’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론 위에서 말한 사전적 정의가 행복에 대한 개념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란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소제목은 '참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미움받고 소외받는 이들’이 되레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받을 상이 크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느낄 수 있는 좋은 상태의 행복이란 하느님 나라에서의 행복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서는 보편적이며 궁극적인 구원을 위한 하느님께 향하는 길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다가감으로써 추구할 수 있는 구원이라는 행복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을 위해 오늘도 주님께 나아가며 그분과 하나 되는 참행복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