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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순교한 김 루치아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2-13 13:55:23 조회수 : 56

김 루치아(1769~1839)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태어나 자랐으며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루치아’라고 불린 것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신앙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김 루치아를 사람들은 ‘꼽추 루치아’라고 불렀습니다. ‘꼽추’라는 말은 등이 심하게 굽은 곱사등이를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김 루치아가 어떤 연유로 등이 굽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등이 심하게 굽었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업신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루치아가 받은 모멸감은 무척이나 컸을 것입니다. 
루치아의 남편은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루치아의 신앙생활을 못마땅하게 여겨 교우들을 절대 못 만나게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루치아는 도저히 견디지 못해 남편과 헤어졌습니다. 그러곤 교우들의 집을 전전했습니다. 교우들은 루치아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루치아는 교우들의 일을 도와 힘든 일과 천한 일을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또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비신자가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비신자인 어떤 양반이 루치아에게 물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지옥이 그렇게 좁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지옥에 집어넣을 수 있소?” 루치아는 “양반님의 작은 마음이 만 권의 책을 품었다 해서 그것 때문에 양반님의 마음이 좁아졌다고 생각할 수 없지 않나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양반은 배운 것이 없는 그녀가 어떻게 저렇게 교리를 쉽게 설명하는지 감탄했습니다.

기해박해가 시작되자 김 루치아를 비롯해 많은 교우가 체포되었습니다. 루치아는 체포될 당시 일흔 살이 넘은 고령이었습니다. 루치아가 포도청에서 고문을 받고 감옥으로 돌아오면 교우들이 돌보았습니다. 재판장으로 또다시 끌려간 루치아에게 고문이 가해졌습니다. 루치아는 절대 교우들의 이름을 말할 수 없다며 어서 형장으로 데려가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루치아는 태형(笞刑) 서른 대를 맞았습니다. 굵은 몽둥이로 뼈만 남은 몸을 내려치자 소리가 났습니다. 계속 그렇게 내리쳤습니다.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결국 루치아는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순교했습니다.
‘조선 순교자록’(1925년)을 지은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스 신부는 김 루치아의 삶을 생각하면 자연히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