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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순교한 성 이광헌 아우구스티노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1-17 09:55:40 조회수 : 61

이광헌(1787~1839)은 신유박해 때 여러 순교자를 낸 경기도 광주 이씨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서른 살이 되자 회개하고 ‘아우구스티노’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명을 ‘아우구스티노’로 한 것은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해 성인이 된 것을 본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광헌이 입교하자 동생과 부인 그리고 자식도 입교하여, 가족 모두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쉬는 교우를 권면하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박해가 더욱 심해지자 이광헌은 박해를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가족이 거처할 집조차 없이, 10년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교우들이 이를 가엾이 여겨 서울 서소문 밖에 집 한 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관(官)의 눈을 피하려고 여관처럼 꾸며 공소로 사용했습니다. 이광헌은 회장이 되어 맡겨진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어느 날, 포졸들이 그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그 곳에서 기도하고 있던 신자들이 모조리 체포되었습니다. 체포된 신자 가운데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의 남편은 예비신자였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포도청을 찾아가 아내를 석방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관원이 거절하자, 남편은 천주교인 53명의 이름과 거처를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포졸들은 즉시 천주교인들의 집을 샅샅이 뒤져 회장인 이광헌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갔습니다.

형리가 이광헌에게 “배교한다고 하면 너와 부인과 동생을 모두 풀어주겠다!”라고 하자, 이광헌은 “차라리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절대 배교하지 않겠소.”라며 배교 할 것을 거절했습니다. 다시 형리가 “아내와 자식이 불쌍하지 않느냐!”라며 몽둥이로 다리를 내려치자, 이광헌은 “나는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약해지고 싶지 않소.”라고 말했습니다. 형리가 참나무 널빤지로 장딴지를 대여섯 번 내려치자 피가 터져 나오고 살점이 날아갔습니다. 다시 세게 내려치자 허옇게 드러난 뼈에 널빤지가 부딪혀 ‘딱딱’ 소리가 났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 모습이 너무 참혹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결국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광헌은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머리를 붙잡아 나무토막 위에 대어놓고 목을 베었습니다. 머리는 네 번 만에 떨어졌습니다. 이광헌 아우구스티노는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앵베르 주교는 순교한 교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시신들을 훔쳐냈습니다. 나는 시신들에 비단옷을 입히고 향료를 바르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가 없어 시신들에 보통 옷을 입히고 자리에 싸 작은 터에 묻었습니다. 조선에 천주교가 흥해지면 이 시신들은 국가적인 보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