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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 때 첫 번째 순교한 정국보 프로타시오 성인 (축일 9월 20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5-01-10 09:23:16 조회수 : 61

1839년, 조정 회의가 열렸습니다. 영의정이 말했습니다. “이 무리(천주교인)는 죽어도 잘못을 깨닫지 않습니다. 이 무리는 아비도 모르고 임금도 모르니 오랑캐나 짐승과 다름없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아 칼과 형벌을 놀이하듯 합니다. 이들은 미쳤습니다.” 회의를 주재하던 김 대비가 말했습니다. “그들을 샅샅이 찾아내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없애 버려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오.” 김 대비의 말이 법령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박해령이 선포된 후 제일 먼저 순교한 사람이 정국보(1798-1839)입니다. 그는 개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가 벼슬하다가 죄를 짓자, 아버지는 신분을 숨기고 서울로 와 평민으로 살았습니다. 정국보는 선공감(현 국토교통부)에서 하찮은 일을 했습니다. 서른 살이 넘어 입교해 ‘프로타시오’로 세례받았습니다.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서울 종로 홍살문 거리에 집 한 채를 마련하자 유 신부는 정국보에게 집 관리를 맡겼습니다. 지방에서 교우들이 성사를 받으러 올라오면 그 집에서 묵었습니다. 그는 교우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습니다. 

정국보가 고발되어 포도청에 끌려가자 형리는 배교하라며 고문했습니다. 정국보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형조로 이송되었습니다. 관원이 혹독하게 고문도 하고 따뜻하게 대하기도 하며 ‘배교’하라고 설득하자, 결국 정국보는 배교를 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대성통곡했습니다. 여러 날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저 엉엉 울기만 했습니다. 정국보는 다시 형조로 갔습니다. 관원이 “무슨 일로 다시 왔느냐?”라고 묻자, “배교했으나 그것을 뉘우쳤소. 나는 천주교인이니 다시 감옥에 가두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관원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한번 배교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돌아가라!”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정국보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들것에 실어 형조 앞에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정국보는 형조 앞에서 여러 날 동안 ‘체포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형조 판서가 문밖으로 나오자 정국보는 엎드려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마음에 없는 말로 배교했소. 그것을 뉘우치오. 나는 천주교인이니 체포하시오.” 판서는 그를 체포하였고 정국보는 기쁨에 차 교우들이 있는 감옥으로 갔습니다. 교우들은 그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정국보는 법정으로 끌려가 곤장 25대를 맞았고 결국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나는 천주교인이오. 천주교인으로 죽기를 원하오.”
(정국보 프로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