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1803~1838)은 경기도 이천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서울로 이사와 한강 북쪽에서 살게 된 이호영은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조선에 들어와 복음을 전할 때, 회장직을 맡아 충직하게 일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친구가 과거 시험장으로 가자고 해 갔더니 황홀한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친구가 “자네가 과거에 급제했네!”라고 하자, 이호영은 “내가 어떻게 과거에 급제했단 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친구가 다시 “임금의 신하가 자네를 잘 알기 때문이지!”라고 말했습니다. 이호영은 깜짝 놀라 깼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순교’할 것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은 적중했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오는데 포졸들이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이호영을 체포했습니다. “어째서 체포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천주교를 믿어 체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있던 누나도 함께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교우들은 옥에 빽빽이 갇혀 잘 때도 다리를 뻗지 못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으로 악취가 진동했다. 염병(장티푸스)이 발생해 여러 사람이 죽었다. 제일 무서웠던 것은 굶주림과 목마름이었다. 교우들은 배가 너무 고파 자리에 깐 더러운 볏짚도 뜯어먹었다. 심지어 감옥 안에 기어 다니는 이까지 잡아먹었다.”라고 다블뤼 주교(제5대 조선교구장)도 증언한 바 있습니다.
이호영은 형조로 이송되어 법정에 섰습니다. 형리가 “천주교는 부모의 은덕을 배반하여 나라가 금하는데, 어째서 천주교를 믿느냐!”라고 묻자 이호영이 대답했습니다. “천주교는 나쁜 종교가 아니오. 천주교인은 임금님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이웃을 사랑하오.” 형리는 천주교를 배반하라면서 ‘주리’를 틀었습니다. 주리는 두 다리를 묶고 그 틈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워 비트는 잔인한 고문이었습니다. 형리가 “네가 말로 천주를 배반하기 싫거든 커다란 글자 하나를 써 줄테니 거기에다 점 하나만 찍든지 침을 뱉어라. 그러면 풀어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호영이 그럴 수 없다고 하자 형리는 이호영을 호되게 매질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예수, 마리아’를 불렀습니다. 형리가 다시 말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신음을 내면 배교한 것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나 이호영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4년 동안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결국 병으로 순교했습니다. 이호영 베드로는 103위 성인 중에 첫 번째로 희생된 성인입니다.
“나는 칼 아래 순교하기를 원했습니다”(이호영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