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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교회를 수호한 성 토마스 베케트 (축일 12월 29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4-12-26 10:33:07 조회수 : 78

토마스 베케트(1118~1170)는 잉글랜드의 거룩한 순교자입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성지 팔레스티나를 순례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라센에게 잡혀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사라센의 집에서 일하면서 그의 딸을 가르쳤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사라센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유인이 되어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는 토마스 베케트를 낳았습니다. 

토마스는 똑똑했습니다. 그는 파리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캔터베리 대주교 밑에서 일했습니다. 당시 캔터베리 대성당은 영국의 정신적 중심지였습니다. 토마스를 신뢰했던 대주교는 국왕 헨리 2세에게 추천해 토마스가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공부를 마친 토마스는 캔터베리 대교구에서 성직자로 일하게 되었고, 대주교는 토마스에게 교회의 중요한 일들을 맡겼습니다. 

헨리 2세는 토마스를 수상으로 임명했습니다. 법에 능통한 토마스는 나라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많은 일을 하여, 왕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교회 권한까지 손에 넣으려 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세상을 떠나자 토마스가 후임 대주교로 선택되었습니다. 토마스는 사양했으나 왕의 끈질긴 부탁으로 승낙했습니다. 대주교로 취임한 토마스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왕이 토마스 대주교를 앞세워 교회 권한을 뺏으려 하자 이에 대주교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왕은 이 일로 대주교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회의를 열어 주교들에게 ‘왕이 교회의 권한을 갖는 것’에 대해 승인하라고 강요했으나, 토마스 대주교는 앞장서서 반대했습니다. 분노한 왕은 토마스 대주교의 모든 재산과 권한을 몰수하고 외국으로 추방했습니다. 

토마스 대주교는 프랑스의 한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왕은 그곳으로 부하를 보내 수도원장에게 대주교를 쫓아내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캔터베리 대교구 신자들도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 교황은 왕에게 그런 일을 멈추라고 했습니다. 왕은 토마스 대주교의 귀국을 억지로 승인했습니다. 7년 만에 영국으로 돌아온 토마스 대주교가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여러 명의 기사가 나타나 대주교를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교황은 살해에 가담한 기사들을 모조리 파문하고, 왕에게도 책임을 물었습니다. 왕은 책임을 회피했으나 여론이 악화되자 맨발로 토마스 대주교 무덤을 찾아가 참회했습니다. 작가 T.S.엘리엇은 토마스 대주교의 순교를 『대성당의 살인』이란 작품으로 썼습니다. 


“순교자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대성당의 살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