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우리는 대림 제3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맘때가 되면 온 동네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음원,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동네 슈퍼마켓, 문구점(문방구) 등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습니다. 또한, 전구나 트리 장식을 보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성탄절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온 동네가 고요하고 조용합니다. 대형 교회나 성당에 전구나 트리가 없으면 아무도 성탄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좀 재미가 없습니다. 온 동네가 성탄 분위기면 ‘그래, 내가 신자로서 보람을 느끼는구만….’하고 생각할 텐데, 요즈음은 그냥 삭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신자인 우리가 성탄 분위기를 만들어 보기를 권합니다.
대림 시기는 기다릴 대 ‘待’와 임할 림 ‘臨’을 써서 ‘임하심을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바로 그 예수님을 기다리는 동시에, 우리를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요한 세례자에게 질문하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 세례자는 그들의 직업을 고려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일러줍니다. 그의 대답이 명료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에 복음은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라고 전합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하며 예수님께서 오실 것임을 전파합니다.
대림 시기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성탄절의 주인공이 마치 산타 할아버지 같습니다. 예수님의 자리는 줄어들고 산타 할아버지의 자리가 커지면서, 우리가 기다리는 분이 누구인지 혼돈이 오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명확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다림의 자세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엄격한 옛 은사님을 기다리는 것과, 사랑하는 손자를 기다리는 것,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것이 다른 것처럼, 대상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성탄절의 주인이시며 주인공이십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