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과 새로운 복음화”
(제98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광범위하고 깊은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복음화의 임무와 사명은 한층 더 절실합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14항)하신 말씀대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제98차 세계 이민의 날의 주제를 “이민과 새로운 복음화”로 정하셨습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과 세계화의 물결로 이민은 이제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가장 가난한 이웃인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족, 새터민 등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기도와 연대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요로운 삶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바로 여기서’ 실천해야 하는 ‘새로운 복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나라를 떠나 머나 먼 이 땅에서 ‘어렵고 힘들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교회는 “민족과 지역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자기 노동으로 이바지하고 있는 타국이나 타 지역 출신 노동자들과 관련하여, 보수나 노동 조건에서 온갖 차별을 막아야 한다.”(사목 헌장, 66항)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고용주나 동료들로부터 신체적인 위협을 받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인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며, 각종 산업 재해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등록 이주 노동자에 비하여 늘 불안한 처지에서 더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당면한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들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의 존엄성만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한편, 더욱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녀입니다.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과 지원을 받는 다문화 가족 자녀에 비해 국적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자녀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정체성의 혼란, 언어와 학습 능력 부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를 포함하는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사법상의 보호를 보장받아야 한다.”(「인권과 화해」, 11항)는 가르침처럼 이들 또한 그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우리 자녀들과 같이 건강하고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새롭게 우리 이웃이 된 많은 다문화 가족 여성들은 성장 환경과 다른 이질적인 문화 때문에 끊임없이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 이민을 선택하였는데도 여전히 궁핍하게 살아가면서 고국에 남겨진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남편과 시집 식구와 이웃에게 성적, 정서적 학대와 착취를 당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으며, 이들의 자녀 가운데 많은 수가 소외와 멸시 속에서 외롭고 서럽고 아픈 날들을 지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 가족 여성들과는 달리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만 있는 새터민은 같은 민족이지만, 공산주의 체제에서 나고 자란 데다 남한에 의지할 사람이나 경제적 기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뿌리내리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것은 남한 주민들이 자기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 환경에 대한 무지를 악용하여 착취까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탈북 주민이 가장 많은 중국은 이들을 난민이 아닌 범법 탈주자로 간주하여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며, 북한 당국은 이들을 더욱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박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인도적인 조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의 자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또한 남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족, 새터민 등의 사목을 맡고 있는 한국 교회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담당자들이 복음화와 더불어 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본당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 까지 확산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마르 14,7)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이들의 아픔, 외로움, 서러움이 그들만의 것이 아닌 나의 것임을 스스로 깨달을 때 비로소 ‘새로운 복음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족 여성, 새터민들을 그저 일방적인 수혜자나 부족한 부분만을 채워 주면 그만인 존재로 여긴다면 그들은 결코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우리와 똑같이 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힘차게 활동할 수 있을 때, 이들도 우리 사회에서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가 되고 세상의 희망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들”(「주님의 말씀」, 105항)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각자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화의 노력을 해오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담당자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자신들이 체험한 하느님을 기꺼이 나누어 주신 모든 이주민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복음화는 이주민들의 삶을 통해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2012년 4월 29일 제98차 세계 이민의 날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주교 옥현진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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