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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제24차 청소년주일 교황 담화문

작성자 : 수원교구 작성일 : 2009-05-26 조회수 : 1695

[담화] 제24차 청소년주일 교황 담화문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24차 청소년주일 담화문

(2009년 5월 31일)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1티모 4,10)


주님수난 성지주일에 ‘세계청소년주일’(World Youth Day)을 거행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5월 마지막 주일’을 청소년주일로 거행하고 있다(주교회의 1988년 추계 정기총회 결정). 이에, 올해 한국 천주교회는 청소년주일을 5월 31일에 지낸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다가오는 성지주일에 우리는 각 교구 차원에서 제24차 청소년주일을 거행하게 됩니다. 이 연례 행사를 준비하면서 주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작년 7월 시드니에서 개최된 세계 청년 대회를 떠올려 봅니다. 이 대회는 매우 기억할 만한 만남이었습니다. 이 대회 동안 성령께서는 전 세계에서 함께 모인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 며칠 동안 체험한 축제의 기쁨과 영적인 열정은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감동적인 표징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2011년 마드리드에서 개최될 세계 청년 대회를 향한 여정에 있습니다. 이 대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콜로 2,7 참조)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이 세계 청년 대회를 기다리면서 함께 준비의 여정을 걸어봅시다. 우리는 2009년 청소년주일의 주제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 우리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1티모 4,10)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선택했습니다. 2010년에는 젊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라고 드린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것입니다.

희망의 때인 청년기

시드니에서 우리는 오늘날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특히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폐막 미사에서 저는 여러분이 모든 인류를 위하여 희망의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하느님 사랑의 전령이 되도록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형성해 주시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희망의 문제는 특히 오늘날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삶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사명에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그저 흔한 희망이 아니라 제가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굳건하고 든든한 희망입니다. 청년기는 기대를 많이 하며 미래를 내다보므로 특별한 희망의 때입니다. 우리는 젊을 때 이상과 꿈과 계획을 가슴에 품습니다. 청년기는 우리의 여생에 관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기는 우리 인생에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물음들이 강하게 제기되는 때일 것입니다. 곧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또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고통과 질병과 죽음은 왜 있을까?”,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물음입니다. 이러한 물음들은 우리가 때로는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장애물에 직면할 때 뚜렷해집니다. 그것은 곧 학업의 어려움, 실업, 가정 분란, 우정이나 바람직한 애정 관계의 위기, 질병이나 장애, 오늘날 만연한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따른 충분한 자원의 부족 등에서 오는 어려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어디에서 희망을 얻을까?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희망의 불꽃을 어떻게 살려 나갈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위대한 희망”의 추구

개인적 자질이나 물질적 재화가 인간 영혼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희망을 보장해 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쓴 대로 정치, 과학, 기술, 경제, 그리고 다른 모든 물질 자원들은 우리가 모두 열망하는 커다란 희망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희망은 “오로지 하느님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를 감싸 안으시고, 우리가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선사하시고 베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1항). 따라서 하느님을 무시하여 나타나는 결과의 하나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특징인 명백한 방향 상실입니다. 그 결과 고독, 폭력, 불만, 그리고 흔히 좌절에 빠지게 하는 자신감 상실이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큰 소리로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예레 17,5-6).

희망의 위기는 젊은 세대에게 더욱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확실성과 가치 또는 확실한 기준이 없는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젊은 세대는 그들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어려움에 부딪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삶에서 상처를 받은 여러분의 많은 또래 친구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문제 가정의 상황, 자유방임적인 교육의 요소들, 힘들고 비참한 경험 등에 따른 인격적 미성숙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불행히도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거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위험하고 폭력적인 행위나 마약과 알코올 중독, 그 외 다른 많은 어리석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나쁜 친구들을 만나 길을 잘못 들어 어려운 상황에 빠진 젊은이들에게도 참다운 사랑과 진정한 행복에 대한 바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젊은이들에게 이 희망에 대해 어떻게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만 인간이 참다운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주요 과제는 젊은 세대가 사랑이신 하느님의 참 모습을 재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복음화입니다.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이방인의 사도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 동안에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전하는 믿음직한 증인이 되는 법을 바오로 사도에게 배우십시오.

희망의 증인인 바오로 사도

바오로 사도가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시련에 빠졌을 때 자신의 충실한 제자인 티모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1티모 4,10). 바오로 사도가 어떻게 이러한 희망을 품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리는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때로 되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그 때에 사울은 여러분과 같은 이십대 초반의 청년으로, 모세의 율법을 따랐으며, 하느님을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맞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싸우고 나아가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사도 9,1 참조). 그리스도 신자들을 체포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바오로 사도는 신비한 빛으로 눈이 멀게 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그는 땅에 엎드려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사도 9,3-5). 이러한 만남 이후 바오로 사도의 인생은 근본적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내면적으로 변화하였습니다. 나중에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는 박해자에서 증인이자 선교사로 변한 것입니다. 그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수만 리를 돌아다니던 끝에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대한 희망

바오로 사도에게 희망은 단순한 이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확신에 가득 차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가 살아 계신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1티모 4,10). “살아 계신 하느님”은 우리의 세상에 현존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함께 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희망이십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라면, 두려워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의 행복인 하늘 나라와 영원한 생명”(「가톨릭 교회 교리서」 1817항)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

예수님께서는 젊은 바오로를 만나셨던 것처럼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사실은 우리가 바라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만남을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는 제게 이렇게 묻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분을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또는 “그분께서는 어떤 식으로 제게 오시나요?” 교회는 주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바람이 이미 주님의 은총의 열매라고 가르칩니다. 기도로 우리의 믿음을 드러낼 때, 우리는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그분을 알아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것처럼, 끈기 있는 기도는 마음을 열어 그분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 우리가 기도로 단련되어 당신께서 주고자 하시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십니다”(「서간집」 130,8.17). 기도는 우리를 희망의 인간이 되도록 하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세상을 하느님께 열려 있도록 해 줍니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34항 참조).

여러분의 삶에서 기도할 틈을 마련하십시오. 혼자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당신도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마태 18,20 참조)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효과적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신앙 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다양한 경험들과 단체 활동, 만남, 과정이 있습니다. 본당의 전례에 참여하여 하느님 말씀으로 또 적극적인 성사 참여로 풍부한 자양분을 얻으십시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성체성사는 모든 신자와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과 사명의 정점이며 핵심입니다. 구원의 성사인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며 당신의 몸과 피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영혼의 양식으로 주십니다. 이는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탄생하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큰 가정인 교회 안에 우리는 세례를 통해 들어가게 되며 화해의 성사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워집니다. 세례 받은 신자는 견진 성사를 통해 성령 안에서 굳건해져 그리스도의 진정한 친구이자 증인이 됩니다. 성품 성사와 혼인 성사는 신자들이 교회와 세상에서 각자의 사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끝으로 병자 성사는 우리가 병들고 고통당할 때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할 기회를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따라 행동하기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고 바오로 사도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깊이 잠겨 살게 되면 여러분은 그분에 대해 말하고, 여러분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그분을 알리고 사랑하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랑으로 가득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어려운 사명에 여러분이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당면한 어려움과 시련에 좌절하지 마십시오.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면서, 모든 것을 즉시 이루려는 젊은이의 성급한 기질을 극복하십시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바오로 사도의 모범을 따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십시오. 여러분 세대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줄 ‘위대한 희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리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희망이 되었다면 여러분이 지닌 기쁨으로, 그리고 영적 사도적 사회적 참여를 통해 그 희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머무르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이 희망을 이웃에게 전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을 드러내는 선택을 하십시오. 돈과 물질 재화와 출세와 성공을 우상화하는 위험을 깨달으십시오. 또한 그러한 거짓 환상에 이끌리지 마십시오. 이기적인 이익의 논리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웃 사랑을 키우고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인간적 재능과 전문 능력을 공동선과 진리를 위하여 쓰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온갖 시련에 부딪쳐도 결코 슬퍼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현존이 그들의 기쁨과 평화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모후이신 마리아

이 사도적 삶의 길에서 바오로 사도를 여러분의 모범으로 삼으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자신의 신앙 생활을 끊임없이 성장시켰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에 대해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로마 4,18)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시대의 예언자들과 성인들로 이루어진 희망의 백성이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 하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이 영적인 여정에 희망의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희망을 구현하시고, 구원자를 세상에 낳으시고, 굳건한 희망으로 십자가 아래 서계셨던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모범이시며 버팀목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시고, 시련의 어두움을 뚫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나는 빛나는 여명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는 베르나르도 성인의 잘 알려진 아름다운 말씀으로 이 담화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성모님의 호칭 중의 하나인 ‘바다의 별’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끊임없는 삶의 풍파 속에서, 단단한 땅을 딛고 서 있는 날보다 폭풍우에 흔들릴 때가 더 많은 여러분, 성난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저 빛나는 별에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시련의 바위들 사이로 떨어지게 되면 저 별을 바라보며 성모님을 부르십시오. 위험과 비탄과 혼란 중에도 성모님을 생각하십시오. …… 성모님을 따르면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도움을 간청하면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을 생각하면 잘못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인도를 받으면 결코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보호를 받으면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면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도와주시면 안전하게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동정 성모 찬미 강론, 2,17).

바다의 별이신 성모 마리아님, 온 세상의 젊은이들이 당신의 성자 예수님을 만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들이 복음과 희망에 충실하도록 하늘의 수호자가 되어 주십시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제가 날마다 기도 중에 여러분 모두를 기억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이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진심어린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09년 2월 2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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