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위해 헌신했던 신앙선조들 숨결 고스란히
장주기 성인 일가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 탄생지
아늑하게 꾸며진 성지와 십자가의 길 조형물 인상적
장주기(요셉·1803~1866) 성인은 1866년 3월 1일 배론신학교에서 프루티에(J. A. C. Pourthie) 신부와 프티니콜라(M. A. Petitnicolas) 신부가 체포될 때 제천 산골로 피했다가 교우들 피해가 걱정돼 자수했다.
앞서 1855년 배론에 신학교가 설립될 때 자기 집을 임시 신학교로 내어주고 신학교 땅에 농사를 지으며 잔일을 도맡았던 그는 신학교 한문 교사 겸 선교사들의 집주인 역할을 했다.
서울로 압송될 때 성인은 역적모의한 죄인에게 씌우는 홍포를 썼지만, 표정은 인자했고 기쁨이 서려 있었다고 한다. 항상 “순교하여 예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던 원의가 이뤄질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해 3월 30일 군문효수형을 선고받고 충남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 등 4명과 함께 참수됐다.
대성당과 소성당, 순교자 묘지, 기도의 광장,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 등으로 구성된 성지는 아늑하다. 이숙자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의 ‘손’에 주목한 특별한 십자가의 길 조형물 등으로 조각 공원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성지는 그 가운데에서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순교 성인들의 뜨거운 열정과 신앙을 호흡하게 만든다. 장주기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대성당은 지난 2010년 봉헌됐다.
대형 십자가 아래 성 범 라우렌시오 주교, 성 장주기 등 성지에서 현양하는 순교자들의 묘소에서는 숙연해진다. 범 주교 묘비를 보면 방인사제 양성에 힘쓰며 김대건 성인을 그 첫 열매로 맺었던 파리 외방 전교회의 역할이, 장주기 성인과 민극가 성인 등 순교자 묘비 앞에서는 박해의 칼날을 피해 하느님을 알리고 교회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평신도들의 수고가 떠올려진다. 묘소는 가묘다.
양간 출신으로 여겨지는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등 가족 순교자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성지의 특징이다. 이들은 장주기 성인의 친척들로 대부분 부모로부터 전수된 신앙을 짐작케 한다.
강버들 신부는 “순교자들 행적에서 여러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한때 배교하지만 이를 뉘우치고 의연하게 순교를 맞는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우리도 신앙을 거스르는 유혹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가족의 정까지 하느님 앞에 내어놓았던 순교자의 삶은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리를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문의 031-353-9725 요당리성지 사무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1-07-25 [제325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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