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 대학 입학 정원 증원 정책을 둘러싸고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정부와 의사 단체 그리고 사회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이제 ‘집단 휴진’이라는 극단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미 4개월 넘게 이어지는 의료 공백 사태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적절한 진료와 치료 시기를 놓쳐 병세가 악화한 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의료업계 종사자와 관련 직군 종사자의 근무 환경과 생계에도 심각한 위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태는 나와 상관없는, 언론 보도에나 나오는 멀리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가족과 이웃, 사회의 생명이 달린 엄중한 사안입니다. 갈등 상황이 계속될수록 피해를 입는 가족과 이웃의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을 주도하는 정부와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사 단체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상대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보다 문제를 키우기만 할 뿐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누구 책임인지, 누구 탓이 더 큰지를 묻는 것도 현재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라는 진술을 양편 모두 명심하여야 합니다. ‘집단 휴진’이 실시되고 이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비롯한 기본권이 더 심각한 상해를 입는다면, 이는 어느 한쪽만의 책임이 아닌 정부와 의사 단체 모두의 책임이고 탓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인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격한 대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말할 때 명확하고 숨김없는 진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226항).
정부와 의사 단체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명확하고 숨김없는 진실에서 출발하십시오. 정부는 정부대로,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있는지, 자신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성찰하고 그 진실에서 출발하십시오.
구체적인 길은 서로 다르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돌보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부와 의사들 모두 같습니다. 이제라도 이 가장 단순한 진실과 초심으로 돌아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것을 양편 모두에게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2024년 6월 1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 용 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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