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성 모독적인 전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전쟁 중단을 촉구했다.
2일 이틀 일정으로 지중해 섬나라 몰타를 방문한 교황은 일정을 소화하면서 평소보다 직접적인 어조로 반전(反戰) 메시지를 설파했다.
교황은 첫날 몰타 정치인들을 만나 행한 연설에서 “유치하고 파괴적인 전쟁 앞에서, 또 모든 사람과 세대를 억압하는 확대된 냉전 앞에서 인간적인 온화함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안타깝게도 (전쟁의) 유치함이 사라지지 않고, 독재정치의 유혹과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광범위한 호전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국가주의적 이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에 사로잡힌 일부 유력자들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 연설에서 특정 국가와 인물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황상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군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교황이 36번째 사도 순방국으로 택한 몰타는 서기 60년 바오로 사도가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상륙한 섬이다. 바오로 사도는 “(섬의) 원주민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인정을 베풀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데다 날씨까지 추웠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워 놓고 우리를 모두 맞아주었다”(사도 28,2-3)고 기록했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아래에 있는 몰타는 지중해를 떠도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난민들이 빈번히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중간 기착지 같은 곳이다. 난민들은 빈곤과 전쟁을 피해 떠나온 리비아ㆍ시리아ㆍ소말리아인이 대부분이다. 인구 50만의 몰타는 난민을 환대하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으나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교황청과 몰타 교회는 난민 환대를 호소하기 위해 이번 방문의 주제 성구를 ‘그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인정을 베풀었다’로 정했다.
교황은 “구원을 찾아 지중해를 건너는 사람들을 위험물로 간주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또 “그들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받아들여져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난민접수센터가 있는 성 요한 23세 평화연구소를 찾아가서는 “이런 곳에서 시작되는 사회적 우정과 만남의 문화를 강화하라”고 당부했다.
몰타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우크라이나 방문이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on the table)”고 밝힌 교황은 3일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방문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교황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며 “보안상 이 자리에서 다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파롤린 추기경(교황청 국무원 총리)과 갤러거 대주교(국무원 외무장관)가 외교 영역에서 (피란민 문제와 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을 묻는 기자 질문에는 “건강이 약간 변덕스럽다. 무릎이 시원찮아 걷는 데 불편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일주일 전에는 걸을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가톨릭신문 2022.04.10 발행 [16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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