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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 느끼고 싶다면, 순례자 여권 들고 떠나자!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0-09-04 조회수 : 3041

 

 

 

코로나19에도 어김없이 순례의 달은 왔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서울 순례길 걷고, 기부하기’ 행사를 열었다. 순례자 여권을 구매하면,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순교자들의 얼도 본받고, 남도 도울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런 뜻깊은 일에 소중한 이들이 동참하면 더 좋겠다. 코로나19로 성가를 부르지 못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본당 청년 성가대 단원들에게 카카오톡을 보내본다. “우리 서울 순례길 같이 걸을래?”

 

태풍 ‘바비’ 가 지나간 탓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8월 2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앞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만났다. 장원준(요한 사도, 반포본당), 김기준(헨리코), 김가현(가브리엘라). 곧잘 어울렸던 성가대 동생들이다. 원준이는 전국 팔도 성지를 누빈 ‘베테랑’ 순례자다. 서울 순례길도 이미 지난해 완주했다. 올해 직장과 개인 사정으로 느슨해진 신앙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재도전했다. 나머지 둘은 이번이 생애 첫 성지 순례인 ‘초보자’들이다. 기준이는 군대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았고, 가현이는 모태신앙이다. 그러나 선뜻 성지순례를 떠날 기회가 없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나름 용기를 내본 셈이다.

 

 

순교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우포도청

 

오는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부터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병오박해 당시 그분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1846년 9월 16일 순교를 앞둔 김 신부가 처형장으로 압송된 길이다. 우포도청 터부터 서소문ㆍ당고개ㆍ새남터순교성지, 나아가 절두산순교성지까지 이어진다. 총 거리는 약 15km. 명동대성당 옆 김대건 신부 흉상 앞에서 결의를 다졌다. ‘님 가신 길 온전히 따를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신부님.’

첫 순례지인 우포도청은 현재 광화문 우체국 자리에 있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김 신부가 순교 전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다. 김 신부는 이곳에서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옥에서 보낸 하루하루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

 

 

아버지가 순교한 자리, 서소문 네거리를 거쳐 압송된 김대건 신부

 

가마를 따라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로 갔다. 조선 시대 공식 처형장으로 44위 성인을 배출한 국내 최대 순교성지다. 김 신부 아버지인 성 김제준(이냐시오)도 1839년 기해박해 때 여기서 순교했다. 아버지가 순교한 자리를 거쳐 같은 영광을 누리러 가는 그 심정은 어떨까.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상반되게 현재 서소문 성지는 조용한 도심 속 쉼터다. 아래에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있다. 이곳 뮤지엄 숍 ‘네거리 相점’은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이다. 아름다운 성물도 판다. 홍일점 가현이는 묵주 팔찌에 달 기적의 메달을 사고는 흡족해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박물관은 8월 29일부터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서소문 성지에 온 김에 가까운 중림동 약현성당에 들른다. 누군가 “‘열혈 사제’에 나온 성당!”이라고 알은 체 한다. 다만 코로나19로 성당은 폐쇄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갑자기 원준이가 작은 꿈을 내비쳤다. “여기서 꼭 혼인성사하고 싶어요.”

 

당고개 성지에서 김 신부가 잠시 머물며 쉬었다. 포졸 한 명이 땀을 흘리는 김 신부의 풀어진 상투를 묶어 줬고, 성인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고 한다. 황토와 도자기 파편으로 꾸민 당고개 순교성지는 한국의 멋이 느껴졌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했다.

 

 

칼 맞으며 신앙 증거한 새남터순교성지

 

한 시간 가까이 걸어가니 건물 사이로 우뚝 솟은 팔작지붕이 보인다. 마침내 김 신부가 신앙을 증거한 새남터순교성지에 다다랐다. 하얀 김 신부 성상이 우리를 반겨줬다. 이곳에서 여덟 번이나 칼을 맞으며 신앙을 증거한 김 신부의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이 아려왔다. 아쉽게도 기념관은 코로나19로 폐쇄됐다. 미사 때만 대성전을 개방하는 탓에 유해도 볼 수 없었다.

 

 

절두산순교성지에서 잡은 성인의 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절두산순교성지로 향했다. 한강변을 따라 쭉 걸었다. 비가 그치고 강바람이 불어 걷기 좋았다. 절두산에 김 신부의 발자취는 없다. 탄생 150주년을 맞아 세운 거대한 성인상과 유해가 있다. 이번에도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성인 유해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도 10월까지 리모델링 공사 중. 아쉬움이 큰 우리를 달래준 건 성지 한편에 자리한 구릿빛 김대건 상이었다. 두 눈 감고 기도하는 모습이 한없이 선하고 친근하다. 성상 옆에는 나무 하나를 두고 척화비가 서 있다. 영원한 생명과 폭압을 뜻하는 상반된 두 상징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묘했다. 한편 어찌나 많은 이들이 김 신부의 손을 잡고 기도했는지 손만 반짝반짝 빛이 난다. 똑같이 손잡고 기도하던 기준이가 성상 얼굴을 뚫어지라 보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신부님이랑 나랑 코가 똑같이 생겼어. 같은 김씨인가?”

 

웃음과 함께 먼 존재처럼 느껴졌던 순교자들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들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그들의 모습이 있는 걸까. 김대건 신부와 마지막으로 셀카를 찍어본다. 마치 친구처럼.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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