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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식별하는 삶이 곧 신앙하는 삶” 수원가톨릭대 학술제 열려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0-05-11 조회수 : 2461

 

5월 6일 수원가톨릭대학교가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의 식별”을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진행했다.

“분별하여 알아보다”라는 뜻의 식별. 가톨릭에서 “식별한다”는 것은 곧 신앙을 살아낸다고 할 정도로 특별하고 깊은 의미가 있다. 이번 학술제에서는 영성 신학, 기초 신학, 교회법 등 여러 신학 분야에서 식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누가 무엇을 식별해야 하는지 살폈다.

학술제 사회를 맡은 기정만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는 서로 다른 신학 영역에서 연구한 “식별”을 한자리에서 나누는 것이 공동합의성(Synodality)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먼저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는 기초신학의 관점에서 식별과 계시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는 “계시가 예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교회는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시를 전달해야 한다”며 계시의 전달은 '식별'을 통해 실현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는가"라고 강조했다.

또한 식별은 그 자체로 신앙의 행위다. 신앙은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고 정화하는 길을 걷는 것이므로, 식별한다는 것은 회개하고 정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식별은 우리 안에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릇된 하느님의 모습과 싸우면서 하느님 얼굴을 계속 알아가는 것, 즉 내 안의 우상을 깨부수는 작업이다.

한 신부는 “하느님 그리고 예수님의 인간적 모습이 식별의 대상이자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예수의 인격을 식별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세상 모든 이가 만나게 하고 체험하게 하는 교회의 사명을 실천할 수 있다. 그는 한국 교회가 식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스스로 계시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주체로서 교회에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식별’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5월 6일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의 식별'을 주제로 수원가톨릭대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정희완 신부(왼쪽)와 한민택 신부. (사진 출처 = 수원가톨릭대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식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손쉬운 율법주의와 엄격주의 선택”

정희완 신부(안동교구, 가톨릭 문화와신학연구소장)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헌과 연설, 강론에서 식별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 줬다. 교황에게 식별한다는 것은 단순히 영적 수련이 아니라 신앙을 살아낸다는 것이라는 정 신부 역시 “식별은 신앙의 핵심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신부는 식별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식별은 교회와 신앙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과 방식,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과 방식, 미래를 전망하는 과정과 방식, 그 모두의 과정과 방식에 적용되고 작동되는 것이며, 읽기와 반성, 성찰, 전망을 포함하는 총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식별의 방향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으로 향한다. 정 신부는 식별은 자신과 공동체, 세상에 대한 반성이자 성찰이지,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심판은 아니라며, “식별은 심판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황에게 식별은 신앙적 의미뿐 아니라 인문적 의미도 있다며, “식별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성찰한다는 것이고 정직하게 묻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별의 과정은 새로운 관점에서 묻고 열린 태도로 답을 찾는 여정이며, 열린 상상, 새로운 상상을 할 줄 모르면 기존의 규범만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식별은 어떠할까.

정 신부는 이런 상황을 겪은 우리에게는 더욱 기존의 관행이 아닌 새로운 상상과 새로운 방식의 식별이 필요하다면서, "(공동체 미사 중단 등으로) 신자들이 자기들이 선 자리에서 자율적이고 능동적이고 주체적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에 교회가 소홀했다”고 반성했다.  

그는 "전례와 본당 중심의 신앙생활은 성직자 의존적으로 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전례의 모습은 신앙을 반영하기 때문에 전례가 모든 구성원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이고 자율적 참여의 형식을 띠고 있다면, 신앙도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사와 본당 생활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을 때, 신자들이 일상에서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신앙생활을 꾸려 가지 못한 것은 전례의 모습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

그는 식별하는 교회는 언제나 신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교회라며 "성사에 물리적 참여가 차단된 신자들의 입장과 고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교회는 또 한 번 성직주의의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전례와 성사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상상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말했다.

5월 6일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의 식별'을 주제로 수원가톨릭대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왼쪽부터) 나호준 신부, 김의태 신부, 윤주현 신부, 정제천 신부. (사진 출처 = 수원가톨릭대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시노드의 가치 한국교회에도 실현되길"
"공동합의성은 민주주의냐 아니냐의 차원 문제 아냐"

김의태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는 ‘세계 주교시노드 규정에서 드러난 교회의 식별 자세’에 관해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주교들의 친교”는 2018년 9월에 나온 주교대의원회의 관한 교황령이다.

김 신부는 “주교들의 친교”가 주교들의 친교와 일치에서 비롯된 체험과 ‘공동합의성’이라는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며, 이 교황령에서 드러난 소중한 가치가 주교회의와 개별교회에도 실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유가 목자와 하느님 백성 간의 부적절한 경청과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사례로 교구청과 하느님 백성 간의 부족한 소통과 협의, 학자들뿐 아니라 사회 전문 지식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연구위원회의 부재, 하느님의 백성이 참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주교회의, 그리고 주교, 총대리, 참사 몇 명만으로 결정되는 교구 시스템, 사제들만 참여하는 사제평의회, 명목상으로만 있을 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교구 사목평의회, 가감 없는 토론 문화의 부재, 다양하고 솔직한 의견을 파악할 수 있는 건의투표권 행사의 부재 등을 들며, "여러 가지 문제들로 시노드가 지닌 소중한 가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정제천 신부(예수회)는 ‘공동합의성’이 민주주의 방식을 의미하느냐는 물음에 답하고, 예수회 창립자인 성 이냐시오의 영적 식별 방식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적 식별은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는 공동합의성의 원리가 된다. 그는 “식별과 선택이 법칙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을 대하는 삶의 자세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분별력과 신앙적 지혜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정 신부는 공동합의성이 민주주의냐 독재냐의 차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인식에서 출발한다며, “경험과 선험을 넘어 초월적 ‘위로부터의’ 지식을 근거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공동합의성이 다수냐 일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누가 알 수 있는가의 문제”라며 “결국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주현 신부(가르멜 수도회, 수원, 대전가톨릭대학 교수)는 영성신학의 관점에서 식별을 이야기했다.

그는 “인간의 영혼에는 하느님이 영, 악령, 인간적 영이 각각 작용하거나 혼재해서 작용한다”며, "하느님의 영은 인간을 선으로 나아가게 인도하지만 악령은 인간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유도하고, 인간적 영은 인간 자신이 지닌 자연 본성적 경향에 따라 인간을 이끈다”고 말했다.

보다 깊은 영적 식별을 위해서는 내담자의 기질과 성격, 살아온 삶, 상처 등을 이해해야 한다는 윤 신부는 "영적 지도자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교만이 영적 식별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영적 식별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그는 “공동체 식별을 위해서는 공동체 회원 개개인의 인간적, 영적 성숙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회원들 사이의 존경과 신뢰가 있어야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를 고민하고 식별할 때 각자가 식별한 것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나호준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는 성경을 하느님 말씀으로 식별하기 위해 자유로운 비평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통시적, 공시적 비평 방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마주하면서 솔직할 수 있어야 하는 자유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성경 본문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긴장과 불일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어느 특정한 주제나 연속성에 반드시 결합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본문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학술제는 수원가톨릭대 부설 이성과신앙연구소가 주최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에는 관계자와 신학생들만 참여한 진행했으며, 유튜브에서 생중계가 되었다. 학술제 영상은 8일 이후 수원가톨릭대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배선영 기자 (daria@catholicnews.co.kr)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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