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7일자 수원주보 5면
신앙에세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내가 사는 아파트가 이렇게 예쁜지 올해 처음 알았다. 관리하시는 분들이 주차장에 떨어진 담배꽁초만 줍는 줄 알았는데, 원예 솜씨도 있었다. 사철나무를 둥그렇게 다듬어 놓고, 관리실 뒤편 화단에는 고추며 방울토마토, 가지도 심으셨다. 공동주택에 살다보면 내 집만 청소하고 꾸미지 바깥 화단을 돌볼 마음을 내지 못한다.
이따금 맨 아래층에 사는 분들 중에 화단을 성심껏 제 정원처럼 가꾸는 분들이 있다. 407동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그런 ‘사람’이다. 꽃 피는 시기를 고려해서 모종을 심고, 줄줄이 다른 꽃나무를 기르고, 늘 모종삽으로 흙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신다. 팔순을 훌쩍 넘기셨다는 그 어르신은, 시내 로터리 근처 시에서 조경사업으로 심어놓은 꽃들이 시들어 씨앗이 맺히면 그것을 훑어오는데, 씨앗을 여기저기 뿌려놓으면 싹을 틔우는 것이 있다고 했다. 한사코 존댓말을 포기하지 않는 그분은 “이 나이에 무슨 꽃이냐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래도 누군가 그 꽃을 볼 테니 심어두는 거죠. 따로 할 일도 없고…”라고 하신다. 자녀들을 다 키운 어르신은 이제는 꽃을 키우는 모양이다.
흙만 보이면 작물을 심는 어르신들을 가끔 본다.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심고 가꾸는 것도 좋을 테지만, 때로는 낯선 행인들도 기분 좋게 만드는 꽃을 심는 사람의 마음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흙에서 흙 너머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게 없어도, 남의 눈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문득 바버러 쿠니의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가 생각난다. 미스 럼피우스는 집을 떠나 먼 도시에 살기도 하고, 열대 섬에 가기도 하고, 만년설이 덮인 봉우리도 오르고, 정글과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살게 된 럼피우스는 루핀 꽃씨를 잔뜩 사서, 들판이며 언덕에 꽃씨를 뿌리고 다녔다. 몇몇 사람이 ‘정신 나간 늙은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었다. 이듬해엔 들판도, 언덕도, 도랑도, 돌담도 푸른빛, 보랏빛, 장밋빛 루핀 꽃들로 뒤덮였다. 아이들은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 했다. 그 후 사람들은 럼피우스를 ‘루핀 부인’이라 불렀다.
루핀 부인은 평생 세 가지 소원을 품고 살았다. 크면 머나먼 세계로 가는 것, 나중엔 돌아와 바닷가에 있는 집을 사는 것,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훗날, 우리가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지에 대해 물으시겠지만,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듯이’ 다른 이에게 ‘장미를 주었는지’도 물으실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했다. 지금 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기다리는 그분이 문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글. 한상봉 이시도로(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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