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제2의 고향’ 데지레 폴리(한국이름 심응영) 신부
1884년 프랑스 아르데슈주에서 태어난 데지레 폴리 신부는 1907년 5월 28일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에서 사제품을 받고 세 달 뒤 한국에 입국했다. 인천 제물포본당(현 답동본당)과 충청도 수곡본당, 서산본당(현 서산동문동본당), 강원도 원주본당(현 원동본당), 대전본당(현 대전목동본당) 주임을 거쳐 1931년 5월 10일 경기도 수원본당(현 수원북수동본당)에서 사목했다.
그는 수원본당에서 사목할 당시 부인 명도회를 조직해 적극적인 전교 활동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성당 건축에도 힘썼던 그는 수원 최초의 고딕 성당인 수원성당을 1932년 11월에 완공했다.
이후 천안으로 사목지를 옮긴 폴리 신부는 1950년 8월 23일 천안본당에서 공산군에게 체포돼 대전으로 이송, 프란치스코수도원에서 9월 23일과 26일 사이에 피살됐다고 전해진다. “이 나라는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내 뼈를 이 땅에 묻을 각오가 됐다”는 신념으로 사목활동을 펼쳤던 폴리 신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난 뒤 주변에서 피난을 권하자 “사제는 본당에 상주하며 신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마땅하다”며 성당을 지켰다. 폴리 신부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자 수원 신자들은 1995년 9월 17일 북수동성당 구내에 폴리 신부의 유품 전시장을 만들고 폴리 신부 기념비를 건립했다. 2007년 ‘심뽈리 화랑’으로 재단장한 이곳에는 폴리 신부의 초상화를 비롯해 십자가와 성작, 성합이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