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2019년 3월 31일자 3면 복음단상 깊이 읽기
“수치”(부끄러움)의 회복
오늘 제1독서의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의 수치를 치워 버렸다.”(여호 5,9) 라는 말씀은 제2독서의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며’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리고 오늘 복음 ‘돌아온 아들에 대한 비유’와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치를 치워 버렸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창세기를 살펴보면, “수치” 혹은 “부끄러움”은 ‘원죄’의 결과에 의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우리 인간은 발가벗은 상태에 있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창세 2,25 참조).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의 권능에 도전하는 결정을 통하여, 다르게 표현하면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를 한 이후에, 또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이 神(신)이 되고자 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부르시자, 인간은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10)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최초의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 앞에 발가벗은 상태로 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실 것임을 약속하셨고,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1) 라고 부끄러워할 때,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루카 15,22-23)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부끄러움이 사라졌음을 알려주십니다.
영적인 삶에서, 우리는 죄로 인해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은 사라졌습니다. 이는 창조 때에 하느님에게서 주어진 인간의 원복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뿐만 아니라 그 누구앞에서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발가벗는 것’은 영적인 관계의 초석입니다.
글. 이수완 로마노(하상신학원 외래교수, 영성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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