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헌법재판소가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 복무의 길을 터줌에 따라 앞으로 격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교회는 정의로운 전쟁론을 견지하지만,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지 않겠다는 이들의 양심적 결정도 존중합니다.
전쟁과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교회의 시각을 서종빈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군대는 전쟁과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입니다.
군인은 무기를 다루고 무력을 행사합니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티끌처럼 가볍게 여깁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전쟁과 군인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요?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주의에 근거해 전쟁을 거부했습니다.
초기 교회 사상가인 오리게네스는 “어떤 민족을 거슬러 무기를 들지 않으며 전쟁을 벌이지 않고 머리이신 예수님에 의해 평화의 자녀가 되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4세기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결합했습니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 제국이 추구하는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말합니다.
이때부터 교회의 교부들은 통치자인 인간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 아우구스티노의 ‘의로운 전쟁론’입니다.
요지는 합당한 정의를 추구하고 평화 재건을 지향하며 복수와 잔악 행위, 보복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당한 전쟁의 조건을 더욱더 명확하게 세웠습니다.
전쟁을 명령할 군주의 권위와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고 선을 조성하고 악을 저지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신학자의 정전론은 오늘날 UN 등 국제사회가 분쟁 사태에 개입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량 살상 무기가 동원된 현대전의 참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전쟁’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무지막지한 파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루려고 하는 목적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가 불신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2년 전 바티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도 정의로운 전쟁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습니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쟁’을 ‘정의로운 평화’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교회가 말하는 ‘정의로운 전쟁’은 방어적 전쟁과 침략적 전쟁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국민을 보호하려는 군사행동과 타국을 정복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규정합니다.
군인에 대해서도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는 일꾼”이라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군인은 이런 임무를 올바로 수행함으로써 평화정착에 이바지한다고 봅니다.
이탈리아 군종교구가 채택한 <정의와 평화의 봉사자> 문헌에 따르면 군인은 ‘군인’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러나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는 이들의 양심적인 결정도 존중합니다.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률을 마련해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면, 신약성경 어디에도 병역 복무자를 비난하거나 단죄한 장면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파르나움에서 백인대장을 만났을 때 군인 신분을 질책하기는커녕 그의 믿음에 감탄했습니다.
요한 세례자도 군사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라고 설교했습니다.
cpbc 서종빈입니다.
출처 : 가톨릭평화방송
http://www.cpbc.co.kr/CMS/news/view_body.php?cid=729257&path=201808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