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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집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9-01 조회수 : 372

얼마 전이었다. 김대건안드레아신부님 200주년 특집으로 한국에 있는 봉쇄수도원 세상 끝의 집이라는 다큐영화가 티브이에서 방영했다. 

 대부분 봉쇄수도원은 외국에나 있어 관심과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낯익은 산속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경북 상주에 있는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이다.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자유, 무소유의 겸손하게 살아가는 베이지색 수도복의 열한 분의 수도사들의 삶이 펼쳐진다. 해맑은 표정, 머릿속이 보일 정도의 민머리, 검은 눈, 파란 눈,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다. 어눌한 발음의 한국어로 밝은 모습으로 얘기하며 까르르 웃지만 언어 속에 들어있는 의미는 아주 담백한 진리였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하느님과 하느님을 만난 자신의 내면에 관한 것이다.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분들이 늘 행복해하는 이유가 바로 하느님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투시오회는 독일의 '브루노'라는 수도사가 1084년에 프랑스에 설립한 봉쇄 수도회이며 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처음 세웠다.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들은 한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은수자들이다. 그들은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규칙이 없고 단지 회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회헌은 거의 천년 동안 별로 바뀌지 않고 잘 존속되었다.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들에게 고독과 침묵은 하느님에게 이르는 지름길이다. 세상 속에서는 세상의 소리 때문에 하느님의 음성이 작게 들리기에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홀로 있어야 하고, 그 '위대한 침묵' 속에 있을 때 비로소 내면의 소리도, 하느님의 음성도 잘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일 식사 후와 월요일 오후 산책에 잠시 주어진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예 말을 안 하는 외적인 침묵과, 일체의 잡념을 멀리하는 내적인 침묵이 규율이다.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 제목이 여기서 나왔다.

 또한 육식이 엄격히 금지된다. 머리는 스님처럼 짧게 깎고 하루 3번 미사와 기도를 위해 성당에 가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독방에서 홀로 지내야 한다. 텔레비전·신문·라디오 등을 보고 듣는 것은 물론, 전화와 편지도 원장의 특별한 허가 없이는 주고받지 못한다. 가족과 만나는 접견도 1년에 단 이틀만 허락된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의 만남에서도 물만 같이 마실 수 있으며 가족과 잘 수도 없다. 그럼에도 짧은 만남이 서운하지도 야속해하지 않고 마냥 행복한 표정과 밝은 대화를 이어간다. 

 자발적 은둔을 택한 그들의 삶은 자연과 닮았다. 억지로 세운 목적에 끌려 다녀야하는 고달픈 우리의 삶과 반대여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신비로웠다. 

 26세에 종신서원을 택한 수도사는 바깥세상에서 무료진료병원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누나 수녀님의 노고를 존경하며 행동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두 남매의 영적대화가 무척 감동이었다. 

 하루하루를 바이러스의 공격에 불안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이 이년 째 계속되고 있다.  열한분의 수도사들의 삶과 기도가 우리들에게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한 수도사는 피부암을 앓고 있어 이발을 하다 혹을 건드려 피가 흘렀다. 이발을 해주던 수도사는 사람은 누구나 아픈 거라고 한다. 병이 생겨 아프면 유난스럽게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서 혼자만 아프니까 억울하고 누구에게든 위로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피부암이 있는 수도사는 피가 묻은 솜을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고 있다. 나이 들어 아픈 게 당연하다는 듯.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 삶이다. 억지로 풍경을 바꾸려하며 고통스럽거나 불법, 편법을 부르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면 자유로워지지 않을지...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 없지만 내어줄 수 있는 것, 아픈 이를 부축해 주는 것, 

나눔은 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소한, 가벼운 것들을 한번 두 번 실천하는 행동이 선한 영향력일 것이다. 

 자신이  세상 끝에 서있다면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 의 묵상이 필요한 요즈음이다.


-글. 유경숙 멜라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