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을 맞이하면서 우리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들을 생각하면서, ‘과연 나는 순교자들의 후손으로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순교자가 묻혀있고 순교자의 숨결이 살아있는 성지에 살면서......
그러면서 1년 전에 읽었던 김길수 교수님의 한국천주교회사 강의를 엮은 ‘하늘로 가는 나그네’라는 책을 다시 한번 펼쳤습니다. 이 책 머리말에서 김길수 교수님의 고백 글이 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고백을 하십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의식할 무렵 나는 이미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성지순례는 무엇하러 다녔고 순교자 성월은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제야 ‘이게 아닌데...’ 하는 어떤 뭉클한 뉘우침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랐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제일 먼저 통사로 쓴 분은 한국사람이 아니다. 한국에 와본 적도 없고 한국사람을 본 적도 없는 프랑스 사람 달레 신부였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쓰게 된 까닭을 그는 너무도 아름다운 한국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역사 속에 망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가 ‘언젠가는 우리의 제단 위에 모셔질 그분들을 잊혀지게 버려두어야 하겠는가’라고 말한대로 103위 한국순교 성인은 시성되어 지금 전 세계 가톨릭교회 제단 위에 모셔져 있다.
달레 신부는 방대한 〈한국천주교회사〉를 저술하면서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사형집행인들이 지치지 않고 고문했고, 천주교인들이 지치지 않고 죽었으며, 하느님은 순교자들에게 지치지 않는 힘과 끈기를 주셨으니 어찌 내가 그분들 승리의 이야기를 쓰는데 지치겠는가!’
하지만 한국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썼다는 달레 신부도 차마 그냥 써내려가지는 못했다.
‘나는 여기서 필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 주님! 이 위대한 한국 순교자들의 인내를 주님만이 갚아주실 수 있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순교자를 내고 있는 이 민족을 주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으시겠지요.’
이방 사제도 기도와 눈물로 쓴 우리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두고 나는 왜 감격의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던가! 이래도 내가 순교자의 후손인가! 그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누가 지금 나의 신앙생활 그 어디에서 저 위대한 순교자 후손의 흔적이라도 찾아낼 수 있겠는가.” 라며 자신의 현 신앙생활을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제 자신도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방인 사제도 한국의 순교자들의 그 아름답고 놀랍고, 숭고한 신앙의 삶을 전해 들으면서 가슴 깊이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 삶을 살아가시고 묻히신 곳에 사는 나는 정녕 그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려보았는가?
이번 순교자 성월은 다시 한번 주님을 사랑한 우리 신앙 선조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의 현 신앙의 삶을 돌아보는, 그래서 나도 우리 신앙 선조,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다짐해 봅니다.
교우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순교자 성월을 보내시길 이 곳에서 기도합니다.
글. 이헌수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