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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순교자 시복재판록>의 장주기 요셉 성인 증언5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6-01 조회수 : 233

찬미예수님!


  늘 감사드리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 그리고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6월의 중반에 접어들면서 더워지고 우리의 옷차림도 긴팔에서 반팔로 바뀌어 가고 있는 날들입니다. 성지는 이번에 대규모의 조경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10여일을 넘는 일정으로 소나무 전지작업, 활엽수 전지작업, 성지담장과 기도길에 있는 향나무 전지 작업 등을 실행할 예정이며, 잔디깎이 작업과 연산홍 전지작업은 이미 실행하였습니다. 6200평의 요당리 성지 부지에 초록빛 잔디와 나무들은 순례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큰돈이 들어가는 작업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실행하고 있고, 작업하시는 분들의 손이 닿을 때마다 다듬어지고 정돈되어 지는 모습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조경 작업으로 성지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고 건강하게 유지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이어 역시 <병인 순교자 시복 재판록>에서 장주기 요셉 성인에 대한 증인들의 증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4명의 증인 중 아홉 번째 까지의 증인의 증언을 들었고 이번 달에는 열 번째 증인의 증언으로 시작합니다. 


10. 이사옥 알렉시오의 증언, 병인순교자 시복재판록 1-63회차(1900년 1월 22일)

  장낙소(장주기) 회장과 한 동네서 있은 고로 아오니 착하고 열심하고 회장 소임도 신부 순명 착실히 하며 잘 하옵더이다. 잡히기는 신(푸르티에), 박(프티니콜라) 신부와 함께 자원으로 잡혀 가서 치명은 고마 수영(水營)에서 안(다블뤼) 주교와 한가지로 하였단 말 들었습니다. 


…(중략)…


  제28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영적(기적)의 다른 말은 못 들었으나, 장(주기) 회장의 손자가 꿈에 보니 제 조부 장(주기) 회장이 보여 왈 “내 신체(시신)를 찾아야 하겠다.” 하매, 그 손자가 꿈을 깨고 고마 수영을 찾아가니, 교우들이 안(다블뤼) 주교와 장(주기) 회장의 묻었던 시체를 다시 파내더라(‘병인치명사적’ 에는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라고 나온다) 하는 말을 전전(이리저리 전해짐)으로 들었습니다. 그 말이 옳은지 모르나 옳은 말이면 영적(기적)으로 알았습니다.


11. 이치문 힐라리오의 증언, 병인순교자 시복재판록 1-83회차(1900년 3월 22일)

  제20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서울서 내려와서 (충청 보령) 고마 수영에서 하룻밤 쉴 새 떡국을 차려다 드리니까, 신부 ‧ 교우는 안 잡수고, 안(다블뤼) 주교는 한 그릇 다 잡사오더라 하옵더이다. 병인(1866) 2월 열엿샛날(본래는 음력 2월 14일) 예수 수난대재(受難大齋, 성금요일) 날에 치명하러 법장(法場, 사형장) 으로 나가시는 것을 보니, 앞에는 창과 기를 든 군사가 나가고, 그 다음에 풍류를 갖추는 풍악장이 늘어서가고, 그 뒤에 안(다블뤼) 주교, 오(오메트르) 신부, 민(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회장(이) 짚둥우리 타고 나가고, 마침에 수사(水使)가 따라 나가옵더이다. 나가실 때에 또 보니, 안(다블뤼) 주교 형상은 흔연(기뻐함)하고, 오(오메트르) 신부는 변색(얼굴빛이 변함) 없고, 민(위앵) 신부는 우는 소리 나고, 두 교우는 변색 없삽더이다. 안(다블뤼) 주교 말씀이 “어서 나가지 아니하고 이리 더디 가느냐?” 호령하시옵더이다. 

  법장 이름은 보령 갈매못이라 하는데, 수사 있던 수영에서 한 10리 되고, 또 강가올시다. 죄인(증언자 이치문)이 처음 만나서 법장까지 따라갔습니다. 법장에 이르러 수사는 높은 데 장막치고 앉고 군사들은 좌우로 가운데 비워두고 섰고, 죽일 이들은 군사들 서 있는 끝에 강가에 내려놓고, 결박하였던 것 다 끌러놓고 상투에 명패 하나씩 달았사온데, 죄인이 그 신체(시신)를 거두어 장사할 제 그 명패를 본 즉 죄목 없이 죄인의 성명만 있사온데, 안, 오, 민, 장은 똑똑히 써 있은 줄 알고, ‘안 주교’라 썼는지 ‘안 안도니(안토니오)’ 라 썼는지는 똑똑히 생각 안 나며, 신부네 와 장(주기) 회장도 어떻게 썼는지 모르오며, 황(석두) 루카 명패는 죄인이 그 시체를 안 거둔 고로 모르옵니다. 죽이기 전에 얼굴에 회(가루) 발랐는지, 죄인이 먼데서 본 고로 똑똑히 모르며, 옷 다 벗기고 죽였는지는 똑똑히 모르나 신체 찾을 때에 보니 옷 하나 없이 발가벗고 있삽더이다.

  먼저 안(다블뤼) 주교가 칼 받으시매 목이 반쯤만 베어지고 죽지 않으시고 몸이 한 번 뒤였습니다. 목 찍기는 공주(公州) 희광이가 찍었는데 그렇게 목반만 찍고 수사에게 가 찍는 수공(일의 품삯) 으로 돈 400냥을 더 달라 하니까, 수사가 주마 허락한 즉, 다시 안(다블뤼) 주교 목 찍으매 목이 온전히 끊어지고, 다른 신부 두 위와 교우 둘은 대번 칼에 죽었습니다. 이 위의 사정을 다 친히 보았으나 희광이가 수사한테 가서 돈 달라하는 것은 먼데서 섰는 고로 못 보고, 친히 보았던 죄인 처남에게 그때에 들었습니다. 그때에 참견(參見)한 교우들이 죄인 누이 이 도로테아와 처남 최 안드레아와 6촌 형수 임가와 홍주살(던) 등이 온데 지금 다 죽었습니다. 


  이상 열 번째 증인 이사옥 알렉시오와 열한 번째 이치문 힐라리오의 증언을 보았습니다. 이사옥은 꿈에 장주기 요셉 성인이 나타나 신체 찾기를 알린 것을 기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이치문은 형장에서 장주기 요셉 성인과 같이 순교한 성직자들과 교우의 순교 모습을 자세하게 증언하였습니다. 형장에서의 순교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위 증언을 들으니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안 다블뤼 주교님은 순교에 당당하셨으나 민 위앵 신부님은 우셨다하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살려 달라 하지 않으시고 용맹히 순교의 칼을 받으신 것은 모두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순교로 신앙의 싸움에 승리하신 순교자분들의 전구를 다시금 청합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