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느끼는, 보는 기준은 다르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보거나 느끼려고 한다. 어떤 사람이든 누구나 좋아하거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일본의 유명작가가 쓴 초기소설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다. 하루키는 국내외에서 잘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얄미울 정도로 이야기를 술술 질 풀어내고 구성력이 탄탄한 작가다. 그래서 인지 나는 소설을 읽으며 흠을 잡으려고만 했다. 초기 작품이니까 어딘지 어설픈 부분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으로 읽어 내려갔다.
다 읽을 때까지 선입견에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흠 잡을 부분이 없어 서글픈 패배감만 들었다. 기본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빛났다. 근래의 소설보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탄탄한 구성과 문장이었다.
“처음” 이라는 의미는 뭔가가 어설프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그것은 처음 이라는 것이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인식 때문에 관대하게 된다. 아름답고 아련하게만 여기는 첫 사랑, 온 마음을 쏟은 첫 정, 마음을 끌어 모아 정성스럽게 다녔던 첫 직장 ..
관대함에서 나온 감정들이 수식어가 붙어있다.
누구의 의견에 따라 바라본다면 시야가 고정되기 마련이다. 누구의 의견은 누구의 것일 뿐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보고, 느낀 생각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한다.
우리나라는 내년에 대선이 있다. 벌써부터 매스컴에 여러 사람이 오르내린다. 오르내리는 사람마다 홍보를 한다. 전부 애국자고 양심적이라고 한다. 자신보다 국민을 더 아낀다며 목숨을 버릴 것처럼 홍보하지만 저마다 평가가 다르다. 누군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닌다. 그 누군가가 대선에 당선되지 않으면 나라가 뿌리째 흔들릴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내 눈으로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 보다 내가 관찰해서 얻은 판단이 더 정확하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도록 노력한다면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