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고 달 수가 넘어가면서 해가 많이 길어졌음을 느낍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하시겠지요.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햇볕이 조금씩 따갑게도 내리쬐고 가을인가 싶을 만큼 새파란 하늘을 보여주더니만, 또 갑자기 반갑지 않은 황사와 먼지로 뒤덮이기를 반복하며 날들이 지나가니 이제 곧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에 일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해도 길어졌겠다 조금 다리가 뻐근하도록 산을 걸으며 머리 속을 비워도 보고, 아침에 눈을 뜬 시간부터 아주 자세하게 내가 무엇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호다닥 시간을 흘리다 보니 어느덧 가득 차 버린 현실의 걱정거리들과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제들이 내 자신을 다 차지할까 막연히 갖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뭇잎이 성지 하늘을 덮어버린 여름이 되고 또 계절이 바뀌는 것이 어쩌면 반갑지만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것에 충실해야 함을 다짐해 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와 무언가 필요한 것을 청하는 기도뿐만 아니라, 일상의 부딪힘 가운데 하느님을 찾는 ‘시간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성모 어머님을 비롯한 성인들과 순교자들께 배우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겠지요. 인간적인 허물이나 마음속의 어두움을 피할 수 없기에 벗어나기 힘든 무력감과 부당함이 무겁지만 그 가운데 하느님을 잊지 않고 그분을 사랑하고자 애쓰는 것, 우리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결국 중요한 한 가지이기도 한 것, 우리가 갖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앞선 저의 고백처럼 삶 속에서 또다시 벽에 부딪혔음을 보았을 때, 우리가 속으로 ‘믿음이 부족하구나’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 사건, 관계, 일. 거기에서 오는 현실적 무게감으로 인해 흐트러지는 것은 결국 사랑인 것이지요.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스스로에게만 더 집중하게 되어 하느님을 잊는 것, 곧 사랑하기 힘들어하는 우리 내면의 고백이겠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랑하기 위한, 사랑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훈련이어야 합니다. 내가 처해있는 구체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반복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위대함은 이 항구함에서 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사랑하기 위하여 고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항구(恒求)하는 일입니다. 마치 하느님처럼 말이죠.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고 아시리아가 바로 그들의 임금이 되리니 그들이 나에게 돌아오기를 마다하였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호세 11, 4-9참조.)
이 땅의 순교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타오르는 주님의 이 성심(聖心)에 이끌려 나에게 충실하시는 하느님과 같이 나의 주님께 충실한 매일의 삶이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