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주신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리 답을 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십니다. 익히 읽으셨고 들어 본 적이 있으실 요한 복음 21장 15이하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느냐? 이 질문을 3번 하십니다. 3번의 의미는 온전하게, 완전한 사랑을 원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같은 사랑을 원하시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6월은 예수성심 성월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느끼고, 실천하기를 다짐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베드로에게 주신, 예수님께 어떻게 답을 드려야 하는지를 자주 묵상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성심을 알고, 느끼고, 실천하려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개관식으로 한다면, 그 보기들은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사랑하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랑 좋은 거 아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표현들이 보기로 제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을 때, 슬퍼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대답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왜 슬퍼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있었던 스승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울컥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숭고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만, 문득문득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것처럼,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들이 떠올라 주춤 할 때가 있습니다. 해서 또다시 추스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6월은 예수성심 성월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그 마음에 우리 마음을 대보았으면 합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질 정도의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베드로처럼 슬퍼지기 전에, 예수님이 주신 사랑을 느끼는 행복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맞대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으면 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말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인 성체조배를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과 닿아 보려고 하셨으면 합니다.
성체 앞에 있는 그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다가 성체 앞이 아니라, 성체 품에 안긴 것 같다는 따스함을 느끼는 그날까지 도전, 도전 하십시오. 저도 도전중입니다.
예수 마음... 내 마음을 열절케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 마음과 같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