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요당리 성지 후원회원님들과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가지만 앙상했던 꽃나무와 다른 여러 식물들이 조심스럽게 초록색 생명을 싹틔우며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날씨도 따뜻해져 산책을 나갔을 때 더워서 겨울옷을 벗게 됩니다.
문득 요당리 성지 초대 신부님은 회보에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해서 2007년 1월 회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회보에는 요당리 성지 개발을 위한 기초터전을 마련했노라고 김대영 베드로 초대 신부님께서 성지의 개발상황을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신부님은 전기와 전화가설, 관정작업, 천막성당 설치, 컨테이너 사무실과 컨테이너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고 천막성당에서 성탄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그 뒤에 음향장비 설치, 천막성당 바닥 칠 공사를 마치셨습니다. 성지 개발의 초석을 닦으신 신부님과 신자분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요당리 성지가 있기까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 발, 한 발 내딛으셨던 과거의 모습에서 오늘의 요당리 성지를 더욱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병인 순교자 시복 재판록> 의 1차 교구 재판에서 3명의 증인들의 증언을 보았습니다. 총 14명의 증인들 중 네 번째 증인의 증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4. 안춘명 시몬의 증언
<병인 순교자 시복재판록 1>, 48회차, 1900년 1월 5일
장낙소(장주기)요셉 회장에 대한 문목
제11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장(주기) 요셉 회장은 본디 수원 사람으로서 나이 예순 댓쯤 되었고 행위 매우 좋은 사람이며, 배론 학당 배설(排設)한 후로 항상 그 학당 땅을 맡았삽고, 교우들이 (장주기) 회장을 다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인자하다 하며 장 회장의 말을 항상 어렵게 여기며 순종하고 조금이라도 회장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입교사(入敎事: 입교한 일)는 모르며 학당 세간은 이 베난시오가 맡아 학당 사무를 다스리더니, 장(주기) 요셉은 그대 그 동네 회장인데 또 (이) 베난시오와 의논하며 학당 일을 가끔 힘써 도와 다스리옵더이다. 신부네가 장(주기) 회장을 믿을 사람으로 여기시고 흔히 교우 찰고(察考) 받는 것을 죄인이 여러 번 보았습니다. 본디 장(주기) 회장이 학당 한 집에 살았으나 살림살이만 각각 한 고로 죄인이 학당에 두 해 동안 같이 있었사오니 장(주기)회장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제12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어제께 여쭌 대로 신부네 잡으러 왔던 포교들이 신부네를 잡아갈 때에 장(주기) 회장도 잡아 가려고 한 즉, 신(푸르티에) 신부가 말려 못 잡아가게 하시는 고로 그때에 아니 잡히고, 신부네 권면으로 죄인과 한가지로 제천 서면 너러골(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에 있는 너럭골 마을)로 가다가 이틀 만에 장(주기) 회장(이) 혼자 배론으로 다시 들어갈 새 죄인도 같이 가려고 한 즉 장(주기)회장이 말리기로 죄인은 같이 못 갔습니다. 장(주기)회장이 배론 들어가신 후로 다시 아니 나오는 것을 보고 잡힌 줄로 알았더니, 과연 머물러 있던 포교들에게 잡혀 배론(에)서 하루 지난 후에 신(푸르티에), 박(프티니콜라) 신부와 한가지로 읍내로 들어가는 것을 죄인이 묘 곁에 숨어 서서 보니 결박 아니 하고 짚둥우리만 타고 가옵더이다.
제13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가신 후에 다시 못 보았으나 제천으로 가고, 신부와 한가지로 서울로 갔다하며 또 갈 때에 (장주기) 회장은 행차칼(죄인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 쓰는 형구)을 쓰고 갔다 하옵더이다.
제14, 15조목대로 물은 즉, 자기는 전해들은 바가 없다고 답했다.
제16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장(주기)회장 무슨 죄 있다고 하는 사람 있었단 말 못 들었습니다.
제17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형벌 받은 줄은 모르나 문목시(問目時: 조목대로 심문받을 때)에나 추열시(推閱時: 심문할 때)에 장(주기)회장 본분에 무엇 잘못 하였단 말 못 들었습니다.
제18, 19조목대로 물은 즉, 자기는 전해들은 바가 없다고 답했다.
제20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장(주기) 회장이 안(다블뤼) 주교와 신(푸르티에) 신부와 한가지로 고마 수영(水營)에 가서 치명하였단 말만 듣고 연유는 모릅니다.
제21조목대로 물은 즉, 답왈 : 장(주기) 회장의 아들(장노첨) 에게 들은 즉, 그 시체를 처음에 교우들이 묻었더니 (장주기) 회장의 아들이 그 후에 가서 다시 파내어 그 근처에 다시 장사하였다 하옵더니 그 후로는 어디로 다시 옮겼는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위 증언을 통해 장주기 요셉 성인은 신자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고 신부들도 장주기 요셉 성인을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주기 요셉 성인은 큰 죄 중에 있지 않았고, 심문 받을 때에도 천주교인으로서, 회장으로서의 본분을 잘 지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