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왜 짐이 되는가?
따뜻한 봄날 오후입니다. 양근 성지 후원 가족 모두에게 3월 인사 올립니다. 2021년 3월 주님의 은총으로 더욱 건강하고, 특히 ‘코로나 19’에 걸리지 말고, 하느님께서 양근 성지 후원 가족 모두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길 청합니다.
3월 사순절의 한가운데서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피정하신 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입니다. 회개란 우스갯소리로 회와 게를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생각하기 나름인 것 입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 힘들다 어렵다 대신에 마음공부, 하느님과 더욱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공부와 마음공부는 끝이 없습니다. 때문에 ‘코로나 19’ 시기를 불안과 걱정 속에서 보내기보다는 더욱 공부하고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보면 대개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먼저 낙관적인 신앙관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늘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에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주 웃고, 유쾌한 삶을 삽니다. 두 번째 부류는 고뇌하는 신앙관입니다. 이는 늘 죄책감과 죄의식 속에서 본인은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며,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로는 회심하는 신앙 즉, 바오로 신앙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회개한다고 하며 금욕과 절재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좋다. 무엇이 옳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이성적인 낙관적 신앙이 좋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친구로서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순 시기를 보내며 나는 어떠한 형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고, 나에게 맞지 않는 신앙은 과감하게 바꿀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연민을 가지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하시니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치유되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참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이 예수님 말씀을 밤에 혹은 아침에 자주 써먹습니다. 꿈자리가 사나운 경우, 혹은 여러 생각이 얽힌 경우에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말하면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시길 청하고, 말씀의 강력한 힘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2월 좀 어렵다 하는 책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책을 보았습니다. 그의 책 존재와 시간은 하이데거가 인생을 살면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일으킨 무시무시한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간 존재 탐구를 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함께 묵상하고 싶은 ‘하이데거’의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대도시는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기와 질시 그리고 경쟁이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사람들을 지배한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마음은 한없이 허전하고 외롭다. (고향 상실의 시대)
서양철학 전통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 파악되었고 이러한 인간 이해가 극에 달한 것이 바로 과학기술문명이다. 이 시대의 과학기술은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과학기술문명의 주체라고 자부하며 살지만 실은 현대라는 거대한 기계속의 부품으로 소모되고 있을 뿐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우상 숭배)
오늘날 우리는 권태와 무기력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소비와 오락 등 자극적인 것에 탐닉하거나, 남의 흠을 들추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가십거리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를 두고 “오늘날 인간은 존재를 망각했다.” 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존재 상실에서 오는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왜 이토록 공허한가)
존재 상실의 공허함은 세계와 사물을 경이롭게 봄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세간의 일들에 대한 호기심이나 잡담에서 벗어나 사물과 세계의 신비에 조용히 마음을 열 때 사물들은 무한한 깊이를 갖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삶은 진정으로 충만해진다. (근본 기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불안이라는 기분으로 찾아와 일상적인 삶의 자명성을 파괴한다. 그제야 우리는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자신과 마주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없다면, 의미로 충만한 삶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왜 불안을 느끼는가)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덧없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의 삶이란 고독과 허무,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하이데거는 인생의 의미를 물을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이데거를 공부하며 존재란 하느님이며, 인간이 하느님을 잃어버리면 무력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그래서 스스로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 만이 절대 해법이고, 정답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2021년 삶의 의미를 찾는 3월 되세요.
양근 성지 전담 권일수 요셉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