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죄와 심판
요즘 바쁘게만 지냈던 우리들에게 갑작스럽게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친하든, 친하지 않았든, 사람들과의 만남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았던 많은 시간의 공백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일들이 떠올려 순간의 갈등과 울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저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 시간에 등장한 사람들을 단죄하거나 심판하며 작은 위로로 삼기도 한다.
내 자신이나 타인은 어느 순간 모두 심판자가 되어버린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자기연민이라는 도피로 합리를 시킨 것에 통회를 하게 된다.
뉴스를 검색하며 제목만 읽는 습관이 있다. 시대에 뒤지는 사고를 막고자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세히 읽다 보면 괜한 분노 속에 갇히는 게 싫었다.
누스마다 공통점은 잘못된 것만 찾아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시시비비의 주체는 근거도 없이 자신의 잣대에 맞춰져있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범죄로 만드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단죄와 심판은 누가 해야 되는 것이지를 생각해야 한다. 마침 양승국신부님의 글이 눈에 들어와 올리기로 했다.
단죄와 심판은 오로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그저 용서하고 또 용서할 뿐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며 십자가상 예수님의 모습을 자주 묵상하게 됩니다. 활기찬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의 모습도 감동적이지만, 십자가 상 예수님의 모습역시 그에 못지않게 감동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의 그 끔찍하고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명언 몇 가지를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이른바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도 합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오 복음 27장 46절)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복음 22장 3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복음 23장 43절)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복음 23장 46절)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복음 19장 26~27절)
“목마르다.”(요한 복음 19장 28절)
“다 이루어졌다.”(요한 복음 19장 30절)
여러 말씀 가운데 오늘은 용서에 관한 예수님 말씀이 제 마음에 큰 반향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복음 22장 34절)
그토록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저런 말씀이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 참으로 놀랍니다. 그 순간 저 말씀이 예수님 입에서 나온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 아니시라면 도저히 저런 표현을 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중략-
오늘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단죄와 심판은 오로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저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유경숙 멜라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