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일의 광야
코로나19의 여파로 그동안 변동이 있어왔지만, 올 해 들어서는 평일에는 20여 분정도가, 토요일이나 주일에는 30에서 많게는 40여 분 정도가 성지를 방문하십니다. 거의 매일 또는 자주 성지에 오셔서 미사 참례하시는 분들도 꽤 많은데 특히 어느 주일과 같은 때에, 처음 이 성지에 오시는 교우분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순례객 자체가 줄어들었기에 예년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인연에 인사를 나누고 때로는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며 평화를 나누는 몸짓으로 다음 또 만날 것을 기약하는 길지 않은 그 시간이 아주 달게 느껴집니다. 이번 사순절에 접어들고 나서도 먼저 와서 환하게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건네주셨던 몇몇 가족들이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나, 성지 성전 안 좁은 제의방에서 혼자 미사를 차리고 거울에 비치는 저를 바라보며 홀로 미사를 드렸던 작년 사순절의 기억과 맞물려, 그분들과 나누었던 평화의 인사는 더 소중했던 것임에 분명합니다. 성지 가족 여러분 모두에게 그 마음 담아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거룩한 회개의 때, 사순의 절기를 은총으로 보내고 계시는지요.....^^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르 1,12-13ㄱ)
지난 사순 제1주일에 들었던 복음의 말씀입니다. 사십 일 동안의 광야에서의 시간, 우리가 매년 지내는 “사순 시기 재계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시어, 저희도 악의 세력을 물리치도록 가르치신”(사순 제1주일 감사송)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쩌면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으로 그려보고 약간의 감흥을 갖는 데에서 그치고 마는 광야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 한 가지를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사순의 절기가 깊어지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본격적으로 이끌리는 때가 오기 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광야의 시간을 마주하자는 것입니다.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적막함이 찾아들고 적잖이 우울함이 새어 들어오는 현실의 광야. 원래대로라면 힘들다 징징거리겠지만, 그동안 소홀해왔던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체험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저는 생각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시간이 주었던 선물로 결국에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내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무게감과 자신의 부족함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유혹을 참아 견디며 나를 위해 죽음의 사랑을 보이신 주님께로 향한 신뢰로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 올 사순절의 이 숙제를 잘도 해내보기를 스스로 바래봅니다.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다. ····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나갔다. ····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하고 말하였다. ····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1열왕 19,3-8참조)
엘리야의 심정으로, 광야를 거쳐 사랑의 끝 단계에 이르러 가는 여정 충실히 보내시기를 기원하며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김유곤 테오필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