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사순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매서웠던 추위가 떠나고 따스함이 젖어들면서 우리네 마음도 움츠러들지 않고 기지개를 펴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지난달까지 많이도 내렸던 성지의 눈을 치우면서, 한 삽 퍼내는 눈덩이 같이 마음 속 어두컴컴함이 이만큼씩 사라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지향으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많은 일을 시작하게 되는 봄의 사순입니다. 성지의 후원회원분들 모두 몸 안팎을 부지런히 가꾸며 거룩한 시기를 만들어 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이사 50, 5-7)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일부입니다. 사순시기동안 전례 안에서 여러 차례 듣고 묵상하게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수난 받는 하느님의 종이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온전히 겹쳐지며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이사 50,8a) 계시기에 겪게 될 고통이 들어 높여짐을 선포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지혜 3,1-5) 역시 수난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자 동시에, 그분을 참으로 닮은 많은 순교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에 온전히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운명과 내 삶의 방향을 일치시킨다는 것에 있음을 깊이 새기게 되고, 실제로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이 시기에 다시 마음에 담습니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 26,42) “일어나 가자.”(마태 26,46) 구약에서 반복되었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는 장면은 그분께서 당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이루시는 것뿐만이 아닌, 우리의 고통도 지고 가시는 것임을 충분히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에서 나아가, 지혜서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실제의 삶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 26,15)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지혜 2,22)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십자가의 신비와는 상반되는 삶의 모습을 보이는 유다입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이 여기에서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이 큰 두 가치의 충돌을 전하는 말씀이 오히려 우리를 독려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진리와 지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헛됨과 어리석음이 드러나는 광경을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미 똑똑히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참된 것은 십자가를 통해 주어집니다. 신앙 선조들에 이어 우리에게 전해진 빛나는 신앙의 보화입니다. 매일의 삶의 작은 틈에서 시작되는 신비가 우리 일상 전체를 비추도록 십자가를 간직하는 마음으로 사순시기 차곡차곡 이루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