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과정 중에 한국교회사를 배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학점을 이수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개략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는 짧은 시간이기에 기초적인 부분만 배우게 됩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곧 순교자들의 역사이기 때문에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배웠습니다. 그리고 103위 성인, 124위 복자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인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수리산 성지에 와서 최양업 신부님의 부모이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이성례 마리아 복자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순교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특히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생애가 참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장남 최양업 토마스를 포함 6형제의 어머니셨던 이성례 마리아. 네 살 어린 남편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혼인한 마리아는 모진 박해를 피해 여러곳을 다녀야 했습니다. 고향 충청도 홍주를 떠나 서울로,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 부평으로 마지막 수리산 교우촌까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었겠습니까?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던 이성례 마리아는 박해가 닥쳐 체포된 후에도 온간 고문과 매질을 이겨냈지만 막내아들 스테파노가 굶어죽는 것을 보며 마음이 흔들려 배교하고 맙니다. 그래서 성인품에 오르지 못합니다. 자식이 죽는 것을 보는 어미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죄인가요? 내가 죽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었을텐데 잠시의 배교 때문에 성인이 되지 못하였으니 하느님의 기준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성례 마리아는 순교하기 전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딱 한번이지만 하느님을 떠난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뉘우치지 않았을까? 하느님 앞에 서기에는 너무 모자람이 많다고 스스로 자신을 낮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하느님은 이런 마리아의 겸손을 아시고 그에게 복자라는 겸손한 호칭을 주신 것이 아닐까? 이성례 마리아의 믿음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