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은, 좀 더 깊게 알고 싶은 대상이 있다고 하자, 어떤 경로로 연결을 시켜야 만남의 정석이 될지를 고민할 것이다. 여러 과정을 거쳐 만남이 성사되기까지는 본인의 절박한 의지가 있어야한다.
일반적인 대상이 아닌 하느님과의 만남은 어떨까.
하느님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 라고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본인의 절박함에 하느님 주변을 서성이며 언제 부르심이 있을지, 눈치를 살피며 기다리지 않을까. 그러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면 스스로 포기를 하거나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허락이 있어야한다.
지난 4월 초였다. 막내남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매우 무겁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폐암4기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폐암은 두 종류가 있다. 암의 진행이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이며 동생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된다. 이미 수술시기가 지났으며 서둘러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의료의 수난에 아픈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동생이 빠르게 알아낸 병원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5차의 항암치료가 필요하며 3차까지 무난하게 마쳤다. 4차 항암에 들어가기 전에 동생을 만나 같이 식사를 했다. 음식점까지 동생이 운전을 할 정도로 별일이 없는 듯 보였다. 4차 항암이 끝나고 퇴원을 준비하려는데 허리에 통증이 심하더니 눕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결국 진행이 빠르다던 암이 척주 네 곳과 머리에 전이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가 돕지 않으면 휠체어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하루에 세 번 나직이 울리는 삼종기도가 안정이 되며 위로가 된다고 했다. 수많은 병원중 그곳으로 갈 수 있었던 데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 호흡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병원에 상주한 수녀님과의 면담이 한몫을 했다. 지금은 강한 약물투여로 모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서둘렀다. 수녀님이 교리를 맡았고 나는 그 외에 갖춰야할 것들을 천천히 준비해 나갔다. 어렵게 면회를 하면서 동생의 표정이 밝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두렵고 불안하기만한 동생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만남을 허락하셨다. 내 곁에 있어도 된다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요한 6장 65절
하느님을 의심하지 않고 따라가는 동생의 마지막 길은 불행이 아니라 축복일 것이다. 병원내 성당에서 이번 주 목요일에 세례를 받을 예정이다. 내 교적에 동생을 입적하여 눈을 감는 날까지 동생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동생도 예외없이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이제 길을 나서야하는 동생이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여 두려움 없이 발짝을 내딛을 것이라 믿는다. 그 다음은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