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장마” “무더위”와 대결 중이신 후원회원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각별히 건강 유의하시고 하느님 사랑 체험하시기를 빕니다. 기말고사의 관문을 잘 통과하고 어농성지에 와서 신나는 물놀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청소년들을 기다리는 요즘은 저에게 평안한 시기입니다.
어농성지 복자 17위 중 7월에 순교하신 훌륭한 동정녀를 소개합니다.
“윤점혜(尹占惠) 아가타”는 1778년경 경기도에서 태어나 양근 한감개(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살았으며, 일찍이 어머니 이씨(李氏)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습니다. 1795년에 순교한 윤유일 바오로와 윤유오 야고보는 그의 사촌 오빠이고, 1801년에 순교한 윤운혜 루치아는 그의 동생입니다.
윤 아가타는 일찍부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려고 동정생활을 굳게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풍속에서는 처녀가 혼인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녀는 몰래 집을 떠날 결심을 하고는, 어머니가 마련해 둔 혼수 옷감으로 남자 옷을 지어 숨겨 둔 뒤에 기회를 엿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어느 날 남장을 하고 사촌 오빠 윤유일 바오로의 집으로 가서 숨었습니다. 얼마 후 윤 아가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이웃 사람들에게 질책을 받았지만 꿋꿋하게 참아 냈습니다.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 입국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윤 아가타는 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과부처럼 행세하며 동정을 지켜 나갔으며, 2년 뒤에 주 야고보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어머니가 사망하자 윤 아가타는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의 집으로 가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또한 주문모 신부님의 명에 따라 동정녀 공동체를 만들고, 그 회장으로 임명되어 다른 동정녀들을 가르쳤습니다. 이후, 그녀는 교리의 가르침을 엄격히 지키면서 극기와 성경 읽기, 묵상에 열중하여 다른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윤 아가타는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고, 이후 포도청과 형조에서 갖가지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밀고와 배교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박해자들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윤 아가타는 양근으로 이송되어 그곳 감옥에 갇혔습니다. 당시 그 감옥에는 여자 교우 한 명이 함께 갇혀 있었는데, 뒷날 그녀는 윤점혜 아가타에 대해 증언하기를 “아가타는 말하는 것이나 음식을 먹는 것이 사형을 앞둔 사람 같지 않고, 태연자약하여 이 세상을 초월한 사람 같았다.”고 전하였습니다.
윤 아가타는 1801년 7월 4일(음력 5월 24일)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순교 당시 그녀의 목에서 흐른 피가 우윳빛이 나는 흰색이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그녀가 형조에서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10년 동안이나 깊이 빠져 마음으로 굳게 믿고 깊이 맹세하였으니, 비록 형벌 아래 죽을지라도 마음을 바꾸어 신앙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