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많은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그분들의 말을 듣고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저마다 각자의 다양한 현실 상황 속에서 조금은 힘겹게 신앙생활 해 나가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는 분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이 자신의 내적, 외적인 처지로 인해 큰 고민을 안고 있고 그래서 저에게 기도를 청하며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에서 오는 신앙의 버거움을 말합니다. 그래서인가, 신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힘든 행위인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도 인간적인 무거움을 동반하는 일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아나가야 합니다. 먼저 성경 말씀 안에서, 그리고 그 말씀이 내 현실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분명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운데 여러 어려움들을 피할 수 없고 그래서 고되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을 말씀하셨고 그 행복에 다다르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3-12). 신앙이 주는 고됨과 복됨, 그것에 대한 묵상이 우리를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행복을 선언하시면서 거룩해진다는 의미를 매우 간단하게 설명하셨습니다(마태 5,3-12; 루카 6,20-23 참조). 행복 선언은 그리스도인에게 신분증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행복 안에서 우리는 스승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날마다 자신의 삶에서 스승님의 얼굴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따라서 ‘행복한’ 또는 ‘복된’이라는 말은 ‘거룩한’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에 충실한 이들은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참 행복을 얻는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63-64항 참조)
우리가 예수님의 메시지에 매혹된다 하더라도 현실 세상은 또 다른 생활 방식을 향해 나가도록 우리를 다그칩니다. 참 행복은 결코 평범하거나 수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성령께서 그 권능으로 우리를 채우시어 우리의 나약함, 이기심, 안일함, 오만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때라야 이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우리를 뒤흔들고 자극하며 우리 삶에 참변화를 요구할 수 있도록 이를 받아들입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덕은 그저 공허한 말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65-66항 참조)
-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2018.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에서 드러나듯이, 참된 복은 거룩함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얻고 찾고 누려야 할 가치는 하느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거룩함은 인간적인 아픔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세상의 가치들을 거스르기에 우리에게 고됨을 주지만, 말씀은 오히려 그 고됨을 피하지 않고 가난함을 요청합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신 수난”(로마 미사 경본. 감사기도 2 양식)을 받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마음에 끊임없이 새롭게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말씀에 대한 묵상이 현실에서 성취되도록 하는 작업이 우리에게 남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며 행해야 할 마땅한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내 삶에서 스스로 다시 써 내려가는 복음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헤아리시는 주님께 의탁하며,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힘을 내도록 합시다. 더워지는 날씨 속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