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이상 쭈욱 성경을 필사한 적이 몇 차례 있습니다. 한번은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또 한번은 복음서부터.. 한 동안은 그날의 복음을 썼지요. 얼마 전부터는 바오로 서간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하루에 한 시간정도 필사를 하고 있지요. 필사를 시작하는 즈음에는 뭔가 좀 허함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현듯 써보자 하면서 시작을 한 것이지요. 쓰다보면 편안해 지고 시간도 그리 흘러갔습니다. 해서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써 내려갔던 노트들이 생기게 되었지요. 그런데 거기까지였지요. 쓰고 나서 책장에 보관만 하고 있었지요. 가끔 먼지를 닦으면서 내가 이런 때가 있었구나하는 잠시의 뿌듯함 정도를 느끼곤 했지요.
가끔 신자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지요. 성경을 필사하셨으면, 필사한 성경을 보면서 우쭐하지 말고 그 필사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필사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했지요. 그런데 정작 저는 써 놓기만 한 것이지요.
필사를 하고 난 후에 필사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선물로 주시기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세례 받은 이에게 묵주를 선물하듯 직접 필사한 성경도 훌륭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신.구약 전체를 다 주면 받는 이도 부담이 될 듯 싶으니 마르코 복음 혹은 바오로 서간에서 하나... 이런 식으로 선물을 한다면, 꽤 괜찮은 선물이 될 듯 싶네요.
본당에서 사목할 때, 예비자 교리를 하면서 3개월 정도 지나면, 마르코 복음을 필사하십시오.라는 숙제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기 전에 개인 면담을 하면서 필사한 노트를 보자고 하면, 대부분의 예비자들은 잘 써오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시간이 없어서, 아직 낯설어서...등등의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아직 못썼다고 하셨습니다. 쓰는데 까지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밤을 새워서라도 쓰겠다고 하시고 며칠 후에 가지고 오신 경우도 있었지요. 세례식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 성경을 필사하시라고 한 이유는 하느님 말씀을 천천히 만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후다닥 읽고 나면 흔적을 찾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한 번 쓴 것은 흔적이 선명하기에 나중에 보면서 또다시 성경을 다시 펼쳐보겠다는 자극을 받을 수도 있기를 희망하면서 숙제로 내 드린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나서 다시 성경을 필사하신 분들이 있기를 바라보지만, 확인은 못했지요. 어떨까요? 필사를 하신 분들이 많을까요? 그 반대가 많을까요?..
요즘은 손으로 무엇을 쓴다는 것이 낯선 세상이 되고 있지요. 이른바 손편지를 쓰기 보다는 글자 자판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을 보내고 받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해서 더욱더 필사를 한다는 것은 한 순간의 이벤트 성격으로 해내는 숙제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몇몇 성당에 가면, 본당 몇 주년 기념 전 신자 성경필사노트라는 설명과 함께 성당 입구에 큰 필사 노트를 전시해 놓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 썼으니 전시용으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이라도 미사 때 필사 성경으로 독서와 복음을 선포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미 그리하고 있는 본당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절인 5월 성모 성월입니다. 좋은 시절에 성경의 한 부분을 써 보세요. 천천히.. 또박또박.. 그 와중에 말씀 안에 편안함과 만나시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