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성지

Home

성지회보
기사

수리산성지 신부님 글

성모공경의 역사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5-01 조회수 : 186

로마 교회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활동 무대였던 카타콤바에는 200년경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의 그림들이 남아 있습니다. 성모 공경의 흔적입니다. 사실 성모 공경은 이미 성경에도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셨으며 함께 기도 생활을 하였습니다(요한 19, 27 ; 사도 1, 14 참조).

초대 교회 때부터 시작된 성모 공경은 교회의 역사에서 네 가지 성모 교의(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로 집약되고, 성모님께 드리는 여러 가지 기도 안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 역시 그 시작부터 성모 공경의 탁월한 신심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순교자들이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간직하고 실천하였는데, 특히 신유박해 이후 1811년 조선 교회 신자들이 북경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서 조선 교회가 재건될 수 있기를 간청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36년에는 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하고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기 위해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매괴회가 설립되었으며, 교우들이 자신들을 성모님의 종으로 바치고 특별한 보호를 구하고자 하는 성의회도 이 무렵에 설립되었습니다.

 

2대 조선 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183812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 교회의 주보로 정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였고, 이에 대하여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그때까지 주보로 모시던 중국 교회의 주보 요셉 성인을 함께 모실 것을 조건으로 1841822일에 마리아를 조선 교구의 주보로 승인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목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723, 리부아 신부에게 보낸 열여섯 번째 편지에서 우리는 그의 성모 신심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교우들은 사흘 동안 먹지 못하여 극도로 쇠약해졌고 또 삶에 대해 절망하여 슬퍼져서 울며 이제 그만이다.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하고들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느님 다음으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성모님의 기적의 상본을 보이면서 겁내지 마십시오. 우리를 도우시는 성모님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말로 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 이제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도움을 잊고 오직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대를 걸고 잠을 자기 시작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비도 그치고 바람도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렇듯 성난 파도 앞, 생사의 갈림길에서 김대건 성인이 의지한 분이 바로 성모님이었습니다.

 

5월 가장 좋은 계절에 우리는 성모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앙 선조들이 그 힘든 박해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신앙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잃지 않고 성모님의 도우심을 빌며 살아가는 성모성월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