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부터 시작한 수원교구내 성지 14곳을 도보로 순례하는 여정을 2년 5개월에 걸쳐 다 걸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첫째주 월요일은 기다려지고 설레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이 찌푸듯해도 일단 걷기 시작하면, 개운해 졌습니다. 때로는 아파서 쉰 적도 있지만, 그래도 사진속의 멋있는 후배 신부-미구엘, 바울, 호세는 그들의 세례명이지요-들과 즐거운 도보순례를 일단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수원교구청에서 출발해서 그곳으로 돌아오는 여정의 일단락을 위해 기념으로 찍은 것입니다.
약 400킬로미터를 걸은 셈이 됩니다. 성지와 성지의 거리가 먼 구간은 둘로 나누어 걷고, 주변의 경관이 좋은 곳은 다시한번 더 걷고 하다보니 기간이 길어진 것이지요. 걷다가 들어간 식당은 예외없이 맛집이었습니다. 또 다시 걷다가 찾아간 편의점에서 마시는 바나나 우유는 피곤함을 잊게 하는 시원함과 달달함 그 자체였지요.
출발전에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도착해서도 성모상 앞에서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이유는 월요일에 성지 성당은 개방하지 않기에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성모님과 함께 순례를 한 것 같아 성모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지요.
사진속의 신부들과 걸으면서 이러저런 대화를 하는 것도 즐거웠지요. 신부는 신부를 필요로 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었지요.
길을 안내해 주는 신부-사진에서 키가 제일 큰-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신부가 멈추고, 이 길이 아닌 것 같네... 하면서 코스가 변경이 되기도 한 적도 있는데, 한번 두 번까지는 너그러움이 발휘되다가 또 다시 아닌가 부네하는 소리가 들리면, 약간의 짜증이 나기도 하면서 좁아 터진 마음도 성찰하기도 했구요.
한번은 여주 성당과 성당 근처에 있는 비각 거리 순교터를 지나서 가남성당까지 가는 약 18킬로미터 여정에서 신자 세 분과 함께 하였는데, 세 분중 두 분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녀오셨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면서 걸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조금씩 쳐지기 시작해서 속도 조절을 하면서 걸었지요. 그런데 잠시 쉬고 걷는데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뒤쳐져 걷고 있는데, 신부가 한번도 뒤를 돌아 보지 않아서 섭섭했다고..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지만, 오래전이고 나이도 있고 해서 속도가 나지 않는데, 뒤를 보지 않고 앞만 보며 걷는 신부에게 주신 섭섭함이였지요. 저는 그게 아니고, 저도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서 속도 조절을 한 것이고... 뒤를 돌아 봤어요... 하고 되물어 보셨지요. 그럼요.. 여러차례 그랬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사제는... 뒤를 돌아 보면서 따라오는 신자들을 살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지요.
도보순례를 완주했다고 하니 동창 신부가 물었습니다. 이제 어디를 걸을 거야... 어디를 걷긴... 다시 걸어야지... 4월은 다시 수원교구청에서 수리산 성지까지 약 23킬로의 여정을 걸어야지.. 2021년에는 11월에 걸었고, 올해는 4월. 봄에 걷게 되는 것이니, 같은 길이지만, 다른 길이기에 새로운 길이 될 것 같다고 했지요.. 사진속의 멋있는 신부들도 같은 생각을 하기에 기쁘게 함께 걸을 것이구요.
부활시기입니다. 부활의 삶은 항상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걷고 있는 길을 새롭게 걸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고, 실천이 있다면 매 순간이 부활의 여정이 되는 것 같네요.
그리 사시기를 원하며 기도 보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