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늘 감사와 존경을 드리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과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는 듯합니다. 교회는 전례력으로 사순시기를 맞았습니다. 전례력으로 참회의 날과 시기는 사순시기와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매주 금요일인데 이때는 교회가 참회를 특별히 실행하는 때입니다.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으로 영성 수련, 참회 예절, 참회의 표시인 순례, 단식과 자선 같은 자발적인 절제, 형제적 나눔(자선 활동과 선교 활동) 등이 있습니다. 사순시기는 이러한 것들을 위하여 특히 적절한 때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이번 달에는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당리 성지에서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을 기억하는 것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이곳으로 피신 오셨다고 추정했던 앵베르 주교님이 민극가 스테파노에게 교회 땅의 경작권을 맡겼는데, 그곳이 요당리가 속한 양감의 과거 이름 수원 ‘양간’ 이었음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즉, 요당리성지가 속한 지역에서 앵베르 주교님에게 교회 땅을 받아 경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교회 땅에 눈독을 들였던 포교들과 배교자 오치서의 밀고로 기해박해 때 서울 근교에서 숨어 있다가 체포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시는지요.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해지거나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다시금 용기를 내어 어려운 일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해내려고 노력도 하실 것입니다. 삶에서 이러한 경험들은 다 있으셨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어려운 일을 대할 때도 있지만 긍정적인 감정으로 어려운 일을 대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 달에 보는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이 바로 어려운 일을 겪었음에도 주님 안에서 긍정적으로 자신의 신앙에 따라 어려움을 극복하신 분이었습니다.
1787년 정조11년에 인천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민극가 스테파노는 어려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다른 형제들과 자랐습니다. 본래 외교인이었던 집안은 부친을 비롯한 형제들이 모두 천주교에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우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20여세에 상처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혼자 살다가 부친과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재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6~7년 만에 두 번째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얼마 후 어린 딸도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큰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컸겠지만 민극가 스테파노는 용기를 내어 신앙으로 이 슬픔을 극복해냅니다. 하느님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이 어려움을 이겨냈으니, 복음을 전하는 일을 더 마음 놓고 하려고 혼자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교리서를 베껴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인천, 수원, 부평 등지를 순회하며 전교하였습니다. 깊은 교리 지식으로 냉담자를 권면하고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자선사업과 외교인들을 위한 전교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당시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로부터 회장직분에 임명받게 되었습니다. 슬픔을 극복하고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체포된 후에 고문을 받고 회유를 받았지만 민극가 스테파노는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포장이 “이 교를 버리고 싶다면 즉시 놓아주마.”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법률이 명하는 대로 하십시오.” 라는 것이 민극가 스테파노의 대답이었습니다. 고문을 가하면서도 형리들이 끊임없이 “배교하라. 그러면 석방된다.” 하였지만 “만약에 나를 놓아주면 다시 내 종교를 준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전교를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관원은 성이 나서 “이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니 사정없이 치라.” 하고는 치도곤을 때리게 하였습니다. 30대 혹은 40대 치도곤을 맞고 감옥에 들어온 민극가 스테파노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고 다음날 고문에도 변함이 없자 관원은 결심이 대단한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할 수 있는 대로 일찍 처치해 버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에 민극가 스테파노는 옥에 갇힌 지 5,6일 후 1840년 1월 30일 5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고문과 회유에도 민극가 스테파노는 순교에 이르는 신앙으로 이를 극복해내었습니다.
민극가 스테파노는 감옥에서 배교자들을 다시 권면하면서 감옥이라는 어려움에도 아무렇지도 않듯 대했습니다. 고문으로 인한 자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갇혀서 목숨을 구할 생각으로 마음이 약해진 배교자들에게 포교들이나 형리들을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신앙을 바로 세워주는 일을 했습니다. 민극가 스테파노의 이러한 노력으로 다시 배교를 공식 철회하여 순교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김절벽 도미니꼬와 이사영 고스마가 그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민극가 스테파노의 신앙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높은 수준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해냈으며 박해를 맞아 체포와 고문과 투옥으로 이루어진 어려운 상황을 역시 주님을 믿으며 신앙으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신앙의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모범이 되십니다.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놀라운 신앙으로 처신하신 민극가 스테파노 성인처럼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사순시기 약한 우리 마음을 굳건히 바로 세우고 사순시기 재계와 육신의 절제에 임하면 좋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