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에 4박 5일 일정으로 사제 피정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10년도 넘었습니다- 선후배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교구 사제들이 많아져서 모두 함께 피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이기에 여러 차수를 마련하여 본인들이 원하는 시기에 피정을 신청하는 방법으로 진행을 하고 있지요.
이번 피정은 지도하는 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알아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침 기도와 미사, 식사시간 말고는 그리 보냈습니다.
저는 피정 장소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필이면 피정기간에 한파가 와서 상당히 추웠지만, 기쁘게 감사하면서 피정 기간 내내 걸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편안하게 성체 앞에 앉아서 이러저런 생각도 하고, 멍하니 있기도 하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않고 멀찍이 물러나서 꾸벅꾸벅 졸았던 제자들처럼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피정 장소에서 우연히 보게 된 피정을 뜻하는 영어표현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피정을 뜻하는 영어표현의 뜻을 찾아보니 다시 잘 대우하다, 다시 잘 다루다, 다시 치유하다 등의 의미가 있더군요. 나의 신앙을 나는 얼마만큼 잘 대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나의 기도는 대우를 받으면서 행해지고 있는가? 후다닥 해치워지는 기도를 하고 있다면 대우는커녕 방치되고 홀대받는 기도가 아닌가 하는 성찰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기도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충만을 못 느끼는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피정을 다녀와서 2주 후에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날 미사를 드리면서 피정 소감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순시기를 거룩히 보내기 위해서는 사순시기를 잘 보내야지가 아니라 사순 피정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피정의 영어표현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피정하는 마음으로 사순시기를 보내시면서 지금 보다 조금 더 나의 신앙을 잘 대우하시며 보내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할 때 후다닥 해치우지 말고, 가끔은 세상의 일에 지쳐있지만, 그래도 묵주를 쥐고 있는 손에게 기특하다고 해주고, 눈이 침침하지만 성경을 펴서 읽고 있는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미사 드리기 전에 미리 독서 복음을 읽고 있는 눈에게 고맙다고 하고, 사순시기가 시작되었는데 시간을 내서 십자가의 길을 1주일에 한 번은 해야지... 너무 바빠서 평일에 성당에 가기가 힘들다면, 주일미사를 드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신자들이 떠난 성당에서 십자가의 길을 하고 집으로 가면 될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도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과 실천을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상 안에서 피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 말씀드렸지요. 이미 벌써부터 지극히 당연하게 그리하고 있다면, 너무나 좋고 감사하지요. 다시, 또 다시 그리하시기를 바라며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자녀로 불리움을 받은 우리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큰 대우를 받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대우받음을 손상시키지 말고, 피정하는 마음으로 사순시기를 잘 보내시고 은총의 시간이 되시는데 기도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