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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덕분에 삽니다"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1-01 조회수 : 192

살다보면, 덕분에 삽니다.. 하면서 받은 도움에 감사를 표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너만 아니었으면... 너 때문에.. 하면서 힘듦과 고통을 받은 것을 아파하기도 합니다.

 

신부로 살면서 후자의 경우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자의 상황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랬기에 2024년에도 신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와 같은 신부들은 참으로 신자들 덕분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의 신부들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사실을 명심한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신부에게 요구되는 서비스를 신자들에게 기쁘게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국교회는 103분의 성인들과 124분의 복자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복자 최인길(마티아) 회장을 떠올려 봅니다.

 

조선 천주교회에 실질적으로 최초로 파견된 사제는 복자 주문모(야고보)신부입니다. 중국인이었습니다. 179412월에 조선에 입국을 하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밀고자에 의해서 그분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어서 잡힐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최인길(마티아)의 역할이 컸습니다. 우선 자신의 집에 거주하던 그분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그 시간을 벌어주고자 신부로 위장하고 집에서 포졸들을 기다립니다. 그가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중국어를 알고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 덕분에 주문모(야고보)신부는 그 이후에 약 6년간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목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지요.

 

반면에 최인길 회장은 신부로 위장을 하고 시간을 끌다가 대신 잡혀가게 됩니다. 신부를 지키기 위해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17956월에 순교하게 됩니다.

 

주문모 신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후 6년간 조선땅에서 사목하면서 항상 최인길 회장에게 큰 빚을 진 채무자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6년이 흐른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납니다. 6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은 많은 신앙의 열매를 일구어 놓았는데 박해로 일단 중단이 됩니다. 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신자들이 잡혀가고, 그분의 행방을 자백하도록 추궁을 받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고통을 많이 받는다고 판단하여 중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의주까지 가게 됩니다. 압록강만 넘으면 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양떼는 목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데, 목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양 떼와 운명을 같이 해야 겠다...” 그래서 자수를 하게 되고, 순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8015월의 어느날 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이런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최인길 회장과 많은 신자들 덕분에 신부로 6년을 사목하였는데,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나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잡혀 가고 있는데, 홀로 중국으로 가는 것이 맞는 해결책인가? 비겁한 결정은 아닌가?.. 그래. 신자 덕분에 살았는데, 나 때문에 신자들이 고통당하면 안 되지....

 

조선땅에서 처음으로 사목을 하신 주문모 신부는 부끄러울 뻔 했지만, 그렇지 않은 길을 오늘을 살아가는 신부들에게 보여 주신 것 같습니다. 덕분에 살고 있는 삶임을 신부들이 명심하면서 덕분의 주체인 신자들에게 조금 더!!!... 살갑게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문모 신부처럼 신자들에게 돌아가는 신부의 길이 2024년에도 계속되기를 기도 청합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너만 잘하면 돼. 다른 신부들은 다 잘하고 있어....

 

2024년에도 단내 성가정 성지를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그 가정에 주님의 온화한 사랑이 함께 하기를 기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