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단상
소박하게 꾸며진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여러분 모두 평화로운 성탄을 맞이하셨는지요.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가 저마다 마음껏 모여 경배하지 못했던 성탄축일, 우리 모두가 가졌던 안타까움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라는 말씀이 가진 힘은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둡게 느껴질수록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라는 말씀이 언제나 우리를 희망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 올해의 ‘성탄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모두가 어려웠던 한 해였지요. 몇일 전 저녁 뉴스를 시청하다가 뉴스가 끝날 무렵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뉴스가 이어지는데, 흐뭇하고 기분 좋은 소식은 없고 온통 걱정스럽고 하이고 소리가 나오는 뉴스거리들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에서 희망을 선포하는 교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마 여러분도 그러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다른 세상의 일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신앙 안에서조차 희망과 기쁨을 하느님 안에서 찾기에 버겁게 느껴지는 시간들을 그동안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콜로 1,15) 성탄의 신비, 한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계셨던 신비스럽기만 한 하느님이신 ‘말씀’께서 참으로 막막하고 복잡하고 힘들고 죄 많은 우리네 삶으로 들어오시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상징 사건’이 아닙니다(그리스도의 ‘부활’이 상징이 아닌 실제의 살과 뼈를 이루는 실재(實在)인 것처럼).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겪는 현실의 희로애락 속에 가장 깊이 자리하시어 모든 것을 이루어가시는 분이 되셨다는 분명한 ‘천상선언’인 것입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현실의 암울한 상황들에서 온전히 벗어난 후에야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저 이 상황들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주십사 기도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와 계신 하느님, 우리 아픔과 한숨 속에 깊이 자리하고 계시는 구원의 빛을 알아보는 일이 필요한 것이지요.
성탄의 희망의 메시지를 기억합시다. 모두가 힘든 가운데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소외되고 고생하고 아파하는 이웃들을 앞세우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며 기도하는 일,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으며 나누는 일, 공동체를 위해 모두 함께 아끼고 불편을 감수하는 일에 동참하는 일, 타협할 수 없는 생명과 진리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 등등, 빛을 향해 가는 우리의 움직임 속에 어둠을 이겨낼 힘을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분명 하느님은 그리하실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이 때에, 우리 신앙의 본질을 다잡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지에서의 또 한 해를 맞이하면서 성지 가족 공동체 모두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사실, 강생하신 ‘말씀’의 신비 안에서만 인간의 신비가 참되게 밝혀진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359항)
글 |김유곤 테오필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