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묵 베드로는 이천 단내 마을 사람이다. 평소 같은 마을에 사는 종조부 정은 바오로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자신도 종조부처럼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였다. 정은 바오로의 아들 정 필립보등이 단내로 기습해 온 광주 포교를 피해 도망가면서 부친 정은 바오로도 함께 피신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정은 바오로 혼자 포졸에게 체포되어 남한산성으로 끌려 갈때, 종손자 정 베드로는 용감하게 나서서 자신도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고 연로한 종조부를 부축하여 함께 관가로 동행하였다. 이때 정 베드로의 아내가 간곡하게 만류하였지만, 평소 열심한 신앙심에 바탕을 둔 남편의 순교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정양묵 베드로는 정 필립보등 정은 바오로의 자녀를 대신해 종조부 정은 바오로를 부축하면서 함께 남한산성으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과 매질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배교하지 않았다. 박해자들은 그들의 순교 의지를 거듭 확인한 후에, 두 사람을 모두 백지사형으로 처형하였다. 백지사형은 죄인의 양팔을 뒤로 묶어 기둥에 매어두고 얼굴에 물을 뿌리고, 한지를 여러 겹 붙여서 점차 숨을 쉬기 어렵게 하여 마침내 질식사하게 하는 형벌이다. 교수형과 함께 감옥이나 밀폐된 장소에서 주로 밤중에 몰래 집행하는 전형적인 비공식적 처형방식이다. 함께 순교한 종조부 정은 바오로의 시신은 그의 아들 정 필립보가 밤중에 남한산성 동문밖에서 찾아서 단내로 모셔와 안장할 수 있었으나 정 베드로의 시신은 정은 바오로와 같이 표시를 해 두지 않았기에 결국 유실되고 말았다.
정양묵 베드로는 집안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꼭 필요한 시점에 효도의 행위로써 용감하게 드러냈다. 혼자 포졸에게 끌려가는 종조부를 직계 자손이 아닌 정 베드로가 용감하게 나서서 동행을 자처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아내가 간곡히 만류한 것처럼 한번 가면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요즘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무모한 행동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에 대한 효도를 자손들이 지켜야 하는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 조선의 유교사회에서 그가 취한 행동은 믿지 않는 일가 친족에게도 칭찬받아 마땅한 행위로, 복음 말씀을 실천하는 용감하고 선한 행위였다. 정 베드로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요한 15,13)의 표본이 되었다.
단내 성가정 성지에서 현양하는 두 분 순교자의 삶을 사진과 같은 자료집의 도움을 받아 옮겼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면서 두 분만이 아니라 수 많은 순교자들의 신앙의 모범과 용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신앙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이여....
저희 가정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