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참 요란한 한 달이 지나갑니다. 그저 별 다른 일 없이 겉으로 보면 평안해 보이는 매일의 삶이겠구나 하는 날들이다가도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참 어렵다 싶습니다. 애써 외면하고 미루고 싶어질 때마다 제 자신을 보며 아쉬운 생각도 들게 마련이지요. 아직도 멀었구나 싶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 이끄심을 새삼 떠올리며, 흔들리더라도 놓치지 않기를 다짐해 보았습니다.
저의 사정이 아니더라도 요란하게도 비가 내렸고 그로 인해 참 많은 사람들이 산란함 속에 잠겼습니다. 매번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빼앗겼습니다. 아무도 없는 성지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야속한 맘도 들었고 걱정도 되고, 언제부턴가 눈비가 많이 오게 되면 불안해하는 제 자신이 우습기도 했습니다. 성지에 오시는 분들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자고 부탁드렸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열심히 기도하며 함께 하는 것이 마땅한 교회의 몫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고통의 무게를 참아 받고 나누며 신앙의 연대, 사랑의 연대를 이어 나가는 것이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무이자 소명일 것입니다. 이 소명에 충실하여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실 고통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사랑의 하느님을 이야기 하며 고통이라는 주제는 상충되기만 할 뿐 그 두 가지 사이의 접점을 쉽게 찾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한 쪽이 무거워지면 다른 쪽은 가벼워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스레 여겨지기에, 함께 가는 것은 버겁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현실의 구체적인 고통의 시간을 맞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큼 더욱 혼란함에 빠질 수밖에 없고, 우리 모두가 지금껏 그런 경험들을 해왔을 테지요. 이 자체를 두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게 중심을 이동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통이라는 개념이 나 자신에게 지극히 주관적으로 쏠려 있는 개념이라면 그 중심을 나에게서 하느님에게로 옮겨 가는 작업입니다. 내 중심으로만 받아들이는 고통이나 사랑이 아닌 하느님 중심으로 다시 깨달아가는 것. 사실 사랑이라는 가치도 내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천적으로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 고통이든 사랑이든 인내와 용서, 희망과 생명 모든 것이 하느님께 그 근본이 있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희로애락은 하느님에게서 그 의미를 찾을 때만이 본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야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이신 그 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분은 이미 우리를 잘 아시기에 당신 ‘사랑’ 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 현세의 이 삶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침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까지 이 소명도 잘 풀어나가고 쌓아나가는 우리네 삶이 되어 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이 길을 충실히 걸어가신 많은 신앙의 선조들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합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