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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당리성지 신부님 글

장한여에 대한 교회측 기록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6-01 조회수 : 162

찬미예수님!


  늘 감사와 사랑을 드리는 요당리 성지 후원회 형제, 자매님과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5월 순례자들이 가장 많았던 시간을 보내고 6월 초순까지 순례자분들을 맞이하였습니다. 그간 정성되이 여러분들께서 여러 방법으로 봉헌해 주신 덕분에 성지 재정이 조금 넉넉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지 땅값 빚도 일정금액 상환하고, 화장실 지하 배관 환기 공사도 하고 성지 3개동 건물에 방수공사도 잡고 중앙광장 경사길을 계단으로 바꾸는 공사도 일정을 잡았습니다. 봉헌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6월은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우리를 열절히 사랑하신 예수님의 성심을 바라보고 그 사랑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성심에 우리도 마음으로 보답해드리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사랑 가득한 봉헌으로 성지가 변화되듯이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가득한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예전과 다른 변화된 나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다는 감사함은 늘 잊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 성심에 보답할 수 있을까요? 가톨릭기도서를 보면 예수 성심 성월 기도로 예수 성심께 천하 만민을 바치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 기도를 보면 주님을 알아 모시지 못한 사람과 주님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예수 성심께 이끌어 달라고 청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당신을 알고 사랑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당신을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당신 사랑을 전하고 싶어 하시고 그들이 또 그 사랑을 받아주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과 멀리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역할을 우리가 하는 것이 예수 성심께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나의 위치에서 예수님의 성심을 전할 길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이어 장주기 요셉 성인의 친척(6촌)이 되는 장한여에 대한 교회 측 기록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병인치명사적>에 장한여에 대한 증언자가 두 명이 있고 그 내용이 다른 것이 있습니다. 


<병인치명사적>


장한여


(장)한여는 장(주기)요셉의 재종(再從: 6촌)이라. 부모의 교훈함을 받아 열심히 수계하며 그 양아들을 가르쳐 열심 수계하고 혈손(血孫)이 없으되 내외 불화함이 없고 천주의 뜻을 순히 받아 날을 지내더니, 군난을 피하여 서울로 가(서) 천한 업으로 생애(生涯: 생계)하고 있다가 그 가속(家屬)이 전 군난에 잡혀 죽고 환거(鰥居: 홀아비로 삶)하며 의지할 데 없는 고로 그 전에 치명한 홍(봉주) 토마스의 당질녀(堂姪女)가 과거(寡居: 과부로 삶)하여 있더니, 두 사람이 언약하되 “지금은 군난 중이라 피차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이(니) 우리가 내외를 맺고 아직 지내다가 혹 잡히거든 서로 갈리지 말고(헤어지지 말고) 한 가지로 위주치명(爲主致命)하자” 하고 혼배하여 (살기를) 

겨우 1년에 포교에게 잡히매 내외 한가지로 뜻을 굳이 잡아 죽기로 정하고 때에 자식을 낳은 지 3일이라. 육정(肉情: 인정)에 자식을 버림이 어찌 거리낌이 없으리오마는 버리고 죽으러 가매 무자(無子: 자식 없는 사람)한 사람이 있어 데려다가 자식

삼겠다 하니, “나는 위주(爲主)하여 죽으면 저것은 살 길이 없으매 데려다 잘 기르라”하고 좋은 낯으로 잡혀가 내외 한가지로 교(絞: 목매다)하여 죽임을 받으니 (장한여의) 나의 35세요.

증인은 직산 돌실 사는 장 안드레아니 나이 65세다. 


장 베드로의 자는 한여요, 고마 수영(에)서 치명한 장(주기)회장 요셉의 재종이니 본디 제천 배론 살다가 군난에 처자를 거느리고 서울 문안 백동(현재 서울 종로구 혜화동)으로 가(서) 피난하다가, 기사(1869) 3월 초3일에 그 아내 이 바르바라와 장치선이 부자와 합 10여 명이 잡혀 우포청에서 치명하고, 장(한여) 베드로는 그때에 피하여 홍(봉주) 토마스의 질녀(조카딸)에게 재취(再娶: 두 번째 장가)하여 상해(늘) 언약하기를 “천주(께서) 우리에게 치명 은혜를 주시거든 내외 한가지로 치명하자” 하더니, 신미(1871) 3월에 칠간안(서울 중구 태평로 2가에 있었던 마을)(에)서 그 숙모 방 프란치스카와 재당질(再堂姪: 7촌 조카) (장)사진이와 합 네 사람이 좌포청에 잡혀 치명하고 또 홍씨 부인이 그때 아이 낳은 지 3일인데 동네 사람들이 서학인(西學人)의 자식이라 하여 성 밑에 버려 오작(烏鵲: 까마귀와 까치)의 밥이 되게 하였나이다.

증인은 그 아들 (장) 요한입니다.


  장 안드레아와 장 요한의 증언은 같은 내용도 있지만 각기 고유한 내용도 있고 상반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두 증언 모두 재가한 장한여가 부인 홍씨와 함께 주님을 위해 순교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내용에서 주님의 은총과 함께이때 처럼 부부가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때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가족, 특히 배우자는 박해시대에 순교에서도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