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한 복판으로 접어듭니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약간은 지치기도 하고 반복되는 삶에서 조금 무뎌지기도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는 정작 매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데 그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오히려 나를 끌고 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곤 합니다. 하루하루 우리 위에 얹혀왔던 삶의 무게가 조금씩 그 무게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크게 거창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주변에서 그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됩니다. 가까운 이들 뿐만 아니라, 성지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서도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 각자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떠할까요. 자신에게서 무엇을 느끼는지 스스로 인식하며 살아감도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 주어지고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지요. 그것이 무엇이며 우리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도하게도 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어쩌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겠지만, 그 하느님의 뜻을 오해하여 길을 잘못 들어서는 일들이 많지 않은가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길을 잘못 들어서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깊은 상념에 빠져 부딪히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언제라도 끊임없이 하느님께 묻고 들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관념 안에 빠질 것이 아니라 성체 앞에 앉아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것이 늘 첫 번째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몫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그저 무거운 삶의 무게로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주어진 일에 있어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 것에 낙심하여 방황하게 되고, 처음부터 중요했던 하느님의 뜻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제일 아파하실 일이겠지요.
과연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은 바로 ‘나’ 에게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인간사(人間事) 안의 모든 일들 중에 그것의 옳고 그름의 문제도 물론 있겠지만, 그 일을 마주하고 행하는 ‘나’라는 한 인격체가 하느님의 관심사입니다. 하느님이라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과 관계를 맺는 주체(主體)로서의 나 자신, 언제나 이것이 중요함을 스스로가 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반대가 되어, 그저 하나의 객체(客體)에 불과한 주어지는 일(小事)들에 주체인 내가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하는 것이겠지요.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가는 참된 주체로서의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날들이시길 바랍니다. 지치거나 무뎌지는 와중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스며드는 기쁨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요한 15, 9-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