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리스본행 비행기를 탔다. 역사와 문화가 로마의 상징이라면 리스본은 파티마와
연결을 지을 수 있다. 내가 가고 싶었던 리스본의 풍경은 무척 수수해 보였다. 어쩌면 수줍은 처녀의 모습과 닮은 곳이다. 세련된 모습으로 확연하게 다가오는 도시가 아니었다. 그런 점이 은근하게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정이 갔다. 강과 색다른 건축이 조화를 이뤄 가만히 들여다 봐야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낮에 도착해 짐을 풀고 주변을 걸으며 힐끔 거렸다. 바다처럼 보이는 드넓은 태주강가에 서서 멍하니 바라다 봤다. 강가에 쭉 뻗은 길과 길 위를 걷는 많은 사람들. 다른 나라사람들의 생김새를 살피는 재미가 있었다. 도시 골목을 누비는 형형색색의 트램이 오래전 기억을 불러내줬다. 고등학교 시절 전차를 탔고 등하교의 가물거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둘째 날, 리스본대성당을 가기위해 숙소를 나와 언덕으로 올랐다. 리스본은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여서 언덕이 많았다. 올드타운인 알파마지역도 언덕에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8번트램을 타지만 나는 슬슬 걷기로 했다. 28트램은 소매치기들의 천국이라 불렸다. 오래된 가게와 집들 사이로 구불거리는 골목길은 마치 미로를 소요하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었다. 먼저 만난 곳은 성안토니오성당이었다. 오래되어 다소 낡아보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마침 성당 관리인이 미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일도 아닌 평일에, 그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미사를 드릴 수 있다니.
나이가 지긋하신 신부님이 미사집전을 하셨다. 미사를 마치고 성물을 사서 축복을 받으며 운 좋게도 안수까지 받았으니 그 기쁨은 가슴 속을 채웠다. 리스본대성당은 공사 중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외형을 살피고는 더 높은 언덕으로 올랐다. 태주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서서 자연의 거대함을 감상했다.
셋째 날, 파티마성지에 가는 날이었다. 미리 버스티켓을 사둔 게 아니라서 서둘러야 했다. 호텔에서 밥을 해서 먹고 치우고는 외출 준비를 마쳤는데도 꾸물거리는 남편 때문에 출발 예정시간을 훌쩍 넘어서 숙소를 나서야했다. 바이샤 전철역으로 갔다. 시아도바이샤 전철역사는 포르투갈 건축의 거장인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건물이다. 천장이 둥근 돔모양이라 빛이 사방으로 반사되게 설계한 특이한 양식이다. 유명한 건축설계자의 건축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서 더 촘촘히 살폈다. 전철을 타고 레드익스프레스터미날로 향했다. 다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한시간 반을 달려 파티마에 도착했다. 파티마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십분가량 걸어가니 파티마성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각기 의미가 부여된 건물이 흩어져 있었고 순례객들이 드나들었다. 세 목동의 조각상과 교황님의 동상, 거대한 십자고상.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는 성물이 뭉클함을 건네줬다. 내 계획은 이틀을 성지근처에 묵으면서 혼자의 피정을 하려했었다. 갑작스런 로마행으로 당일로 오게 된 게 너무 아쉽기만 했다. 다행히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나를 성지로 이끈 성모님의 부르심은 큰 위로였다. 고생스럽게 살아온 목동들에게 나타나시어 얼마나 힘들었냐며 품어주셨던 그 모습이 내게도 그러신 듯 했다. 늦은 출발로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성지를 떠나며 자꾸 뒤를 돌아다 봤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혼자 가서 성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은 벨렘지구를 가기로 했다. 햇살이 도시를 향해 하염없이 내렸다. 숙소에서 한시간 반을 걸어 벨렘에 도착했다. 대항해시대를 선포하며 만든 기념탑에서 사진을 찍고 맞은편 세계문화유산인 제레니모스수도원으로 옮겼다. 대항해시대를 꿈꾸던 왕자는 기도가 필요했을 것이다. 왕자는 기도를 해줘야하는 수도사들을 위해 수도원을 건립했으며 성당 안은 웅장하고 화려한 고딕양식이었다. 수도원 수녀님들은 제복에 계란 흰자를 묻혀 다림질하여 입었고 남은 노른자를 이용해 만든 에그타르트비법을 전수받은 오래된 가게에서 오리지널 에그타르트를 사먹었다. 날이 저물어졌다.
파티마에서의 성모님과 특별한 만남은 죽을 때까지 남아있을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