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많은 비, 뜨거운 날씨 등의 예보와 같이 좋지 않은 소식들에 많은 걱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기쁜 소식과 그에 따르는 즐거움만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저는 이 믿음 안에서 모든 분들이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 안에서 기쁨과 평화 얻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신앙인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젖어있었던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기쁨과 편안함을 뒤로하고 신앙의 기쁨, 곧 복음에 대한 감동과 친교의 행복을 찾아 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의 모습,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더 많이’와 ‘열심’을 강요하며, 그 때문에 또 다시 지쳐갑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그간의 외면과 소홀함에 대한 보속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속은 자신에 대한 몰아침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 안에 갇혀, 그분께로부터 오는 은총을 되찾지 못하게 되며, 신앙생활은 자유로움과 능동성을 잃은, 기계적이고 경직된 반복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오메트르 성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도록 합니다. 성인은 속세의 즐거움에만 익숙하고 그것을 전부로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자신을 떼어내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신앙의 기쁨을 찾는 이들, 또 신앙의 방황이나 위기는 겪지 않았지만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맛본 후에는 거룩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며, 하늘나라에서는 그 즐거움이 더욱 크고, 더욱 완전하며, 끝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신앙의 기쁨을 피워내는 바탕에 대해 알게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평화’로, 이는 하느님의 다스리심 안에 머무는 일, 곧 그분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결국 성인의 가르침은 행동이 먼저가 아니라 관계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나무의 뿌리가 싱싱해도 땅에 심겨 있지 않으면 나무는 결국 메마르게 됩니다. 또 아무리 멀리 날 수 있는 새라도 바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얼마 날지 못하고 지쳐 땅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렇듯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할 수 있어도 구원의 말씀에 대한 충실함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은 현실과 결실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언제나 주님께서 이루신 평화 위에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럴 수 있도록 ‘옛날에 나 이만큼은 했는데, 나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들에 빠져, 자신에게 ‘더 많이’와 ‘열심’을 강요하기보다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도움을 받으며, 그분 말씀의 인도를 굳건히 쫓아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더 깊어진 사랑’과 참된 ‘열성’으로 무장되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든 새로움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좋고 영원한 기쁨, 곧 복음에 대한 감동과 친교의 행복 안에 온전히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으로 ‘해야 할 일’을 헤아리기보다 믿음으로 구원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평화’가 이루는 참되고 영원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도록 합시다.
거룩한 불꽃으로 우리를 사르는 예수님의 성심과 함께 하는 새로운 달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성심을 깊이 묵상하고 참여한다면, 그분의 사랑에 의해 새로워지고 열정으로 가득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하느님을 맛보고 그분의 좋으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달, 예수님의 성심과 함께 하며, 더 없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또 행복하십시오.
손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