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요당리 성지를 사랑해주시는 후원회 형제, 자매님과 순례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부활 축하드립니다. 어느새 성지의 잔디밭도 초록빛으로 가득해지고 나무들에는 초록빛 잎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영산홍도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만발하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덜 피어도 아름답지만 만발하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기대해 봅니다.
부활시기를 맞아 예수님을 처음에 믿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를 보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했던 토마스를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보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토마스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스는 주님을 보지 못한 신앙인들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부활의 증거를 찾았습니다. 마치 무언가 큰 것을 기대하며 찾는 우리들처럼. 그런 토마스에게 예수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셨나요?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서 믿을 수 있었지만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무수한 증언들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성경말씀, 성인들의 말씀, 순교자들이 남기신 말씀, 많은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고백하는 말들 등등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성사를 통해서 또한 전례를 통해서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느끼며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부활시기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더해 봅시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이어 장주기 요셉 성인의 조카 장치선의 포도청 2차 심문을 계속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조 주서를 만났는데 이른바 평양 댁이라는 사람이 웃으면서 저에게 말하기를 “내 집에 머무를 것이 어떻소?” 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쁘게 (그 말을 ) 따라 그 집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조철증이 와서 저를 만나보고는 웃으면서 묻기를 “바닷길 수천 리를 건너 어떻게 갔다 왔으며 그 병선은 어느 때에 나오는가?” 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사정을 상세히 답해주니, 조 주서가 또 묻기를 “서양 배가 바다를 건너오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과연 무슨 일이요?” 라고 했습니다.
제가 답하기를 “오로지 천주교를 널리 퍼뜨리는데 있고, 결코 (사람을) 죽이고 해치려는 마음은 없소.” 라고 했습니다.
조 주서가 또 묻기를 “만약 천주교를 널리 퍼뜨리고자 한다면 국가를 침범할 계책은 없는 것이오?” 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천주교의 본뜻에는 진실로 다른 사람의 나라를 뺏는 법은 없소. 만약 천주교를 널리 퍼뜨리게 되면 (우리나라의) 풍속 중 괴이한 것은 혹 바꾸거나 고치는 법은 있을 수 있소.” 라고 했습니다.
(조철증) 주서가 말하기를 “우리들이 꾀하는 바는 일찍이 수백 년 동안의 뼈에 사무치는 원통함을 (푸는데 있으니) 국가에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린 지가 오래되었소.” 라고 했습니다.
제가 답하기를 “성숙한 어른으로서 어찌 감히 이러한 말을 하는가?” 라고 했습니다.
이에 서로 헤어지고 이리저리 숨어 다니다가 다시 조 주서, 지자익, 임 선생등과 만났습니다. 그해(1866년) 9월에 저와 김계쇠, 송운오, 박복여 등이 서양 배를 따라가 상해에 머물렀습니다. 작년(1867년) 8월에 비로소 우리나라에 돌아왔습니다.
위 기록에서 장치선과 조 주서에 대한 대화 내용 중에 서양 배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조 주서는 그간의 박해에 대해서인지 국가에 일이 일어나기를 내심 바라는 듯 한 말을 합니다. 서양 배가 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국가를 침범할 계책은 없는지 물어봅니다. 이에 장치선은 천주교를 널리 전하기 위한 것일 뿐 서양배가 와서 해를 끼치거나 다른 나라를 빼앗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조 주서를 나무랐습니다.
서양배가 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둘은 입장이 달랐습니다. 같은 사안이지만 장치선은 온건했습니다. 그는 국가에 해를 끼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천주교인도 조선의 한 백성이었습니다. 나라의 안위를 생각했던 백성이었습니다. 이런 백성에게 가해진 가혹한 박해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강버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올림.